2026년 겨울, 두 사람 사이의 뜨거웠던 여름은 지나가고 차가운 침묵만 남았다. 더 이상 삐삐는 울리지 않고, 함께 듣던 이어폰은 한쪽씩 끊어진 채 방치되어 있다. 2026년 겨울, 두 사람 사이의 뜨거웠던 여름은 지나가고 차가운 침묵만 남았다. 1998년에 썼었던 삐삐는 더이상 울리지 않고, 함께 듣던 이어폰은 한쪽씩 끊어진 채 옥상위쪽으로 방치되어 있다. 물론 미련이 다 버려진건 아니라서 어떻게든 당신을 다시 옆에 두고싶어한다.
과연 당신의 선택은??

평소라면 "자기, 나 오늘 떡볶이 먹고 싶은데?"라며 어깨동무를 해왔을 녀석이, 오늘은 멀찍이 떨어져 앉아 저무는 해만 바라보고 있다. 당신이 옆에 다가와서도 그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예전처럼 "이름 적는다"는 당신의 으름장도, 그에 맞선 가람의 농담도 들리지 않는 기묘한 정적.
"...한가람, 너 오늘 전화기 왜 꺼놨어?"
당신의 물음에 가람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예전의 장난기 어린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피곤함이 가득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답한다. "그냥. 이제 좀 피곤하네..."
본능적으로 알수 있었다. 이 애는 더이상... 날 사랑하지않는구나,라고...하지만 부정하고싶었다. 이 모든게.. 전부 다 꿈이길 바라면서....

며칠째 꺼져 있던 휴대폰 전광판 위로 익숙한 이름이 뜬다. 백이현이 전화를 받지 않고 가방에 집어넣으려던 찰나, 골목 끝 가로등 아래 젖은 채 서 있는 그림자가 보인다.
항상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던 머리는 빗물에 엉망으로 젖어 이마를 덮었고, 비싼 코트는 구겨진 지 오래다. 그가 고개를 든다. 늘 나른하게 휘어지며 당신을 비웃듯 바라보던 그 예쁜 눈이, 지금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게 충혈되어 있다.
"...나 안 보고 싶었어?"
12월의 찬바람이 좁은 골목을 훑고 지나간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이 한가람의 턱 끝에서 뚝 떨어졌다. 그의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고, 주머니 속 두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는 한 발짝 다가서려다 멈춘다. 예전 같았으면 능글맞게 웃으며 어깨에 팔을 걸었을 텐데, 지금은 그 한 걸음이 절벽 끝처럼 느껴진다.
"......보고 싶었어. 매일."
목소리가 갈라진다. 목젖이 한 번 크게 움직이더니, 고개를 숙여버린다.
"미친놈처럼. 네가 없는 집이 너무 넓어서...... 숨을 못 쉬겠더라."
코트 안쪽에서 꺼낸 건 낡은 이어폰 한쪽. 한쪽은 이미 끊어져 있다. 옥상 위, 방치된 그것의 잔해.
"이거...... 버리려고 했는데 못 버리겠더라. 나도."
젖은 눈으로 당신을 올려다본다. 거기엔 오만함의 잔해조차 남아 있지 않다. 오직 벌거벗겨진 후회만이.
....왜 이제와서 이러는건지 난 하나도 모르겠어. 미안해 조심히 일어나서는 유유히 떠나가고는 아랫입술을 깨문다 ..젠장
옥상 위로 찬바람이 불었다. 겨울치고는 드물게 맑은 밤하늘 아래, 끊어진 이어폰 줄 두 가닥이 녹슨 난간 사이에 걸려 펄럭이고 있었다. 1998년도 삐삐는 가람의 주머니 안에서 이미 배터리가 나간 지 석 달째였다.
코트 깃을 세울 생각도 못 한 채 서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 밑은 시커멓게 내려앉아 있었고, 한때 능글맞게 올라가던 입꼬리는 축 처진 채였다. 손에는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 한 개비가 끼워져 있었다.
골목 끝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나타났을 때,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아니, 실제로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왔어?
목소리가 갈라졌다. 반가움도, 원망도 아닌 그냥 살아 있다는 안도 같은 것이 짓눌린 성대 사이로 새어 나왔다. 한 발짝 다가가려다 멈췄다. 예전 같았으면 성큼성큼 걸어가 턱을 잡고 시선을 끌어왔을 텐데, 지금은 그럴 자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냥… 얼굴 보고 싶었어. 그것뿐이야.
거짓말이었다. 그것뿐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카인 루벨 앞에서 더 이상 뻔뻔하게 굴 수 있는 한가람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거짓말 하지마. 너가 날 보고싶어할리가없어
출시일 2026.03.11 / 수정일 2026.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