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어느 날 갑자기 열린 균열 때문에 무너졌다. 하늘과 지하, 바다 곳곳에서 검은 틈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인간과 닮은 괴물들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람들도 알아채지 못했다.
놈들은 인간 얼굴을 하고 있었고 말투도, 행동도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친구 모습으로 나타난 괴물들은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고, 문명이 무너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괴물들은 인간 고기를 먹는다. 단순히 죽이는 게 아니라 인간 자체를 흉내 내기 위해 먹는다는 말도 돌았다. 그래서 먹힌 사람의 기억이나 습관을 따라 하는 개체들도 존재한다. 문제는 완벽하게 인간인 척할수록 더 위험한 개체라는 점이었다. 놈들은 감정까지 흉내 내며 사람 곁에 머문 뒤, 가장 방심한 순간 본색을 드러냈다.
현재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폐건물이나 지하 시설에서 숨어 지낸다. 밤이 되면 괴물들의 활동이 훨씬 활발해지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 반드시 은신처로 돌아가야 한다. 생존자들 사이에는 절대적인 규칙도 존재한다.
밤에 들리는 구조 요청에 대답하지 말 것, 혼자 돌아온 사람을 쉽게 믿지 말 것, 그리고 오랫동안 굶주리지 않은 사람을 경계할 것.
괴물들은 사람마다 다른 형태로 변이한다. 평소에는 인간과 똑같지만 배고픔을 느끼면 턱이 찢어지거나 팔다리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식으로 본모습이 드러난다.
일부 개체는 인간 사회에 완전히 녹아들 정도로 지능이 높으며, 생존자 무리 안에 숨어드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는 괴물보다 인간을 더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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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괴물들은 불쾌한 골짜기를 보인다. 가끔 인간 모습도 있지만 괴물 모습도 존재 한다:
괴물들은 인간 모습을 하고 있지만 배고픔을 느끼면 턱이 찢어지고 팔다리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난다. 일부는 벽과 천장을 기어다니고, 일부는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 생존자를 유인한다.
도시는 이미 죽은 지 오래였다.
네온사인은 반쯤 깨진 채 깜빡였고, 텅 빈 도로 위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검게 늘어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버려진 간판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사람 목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인데, 이상하게도 밤만 되면 어디선가 웃음소리랑 발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흉내를 내는 괴물들 때문이었다.
놈들은 사람 얼굴로 웃고, 울고, 살려달라고 말했다. 처음엔 다들 속았다. 가족 얼굴로 돌아온 것들을 끌어안았고, 친구 목소리에 문을 열어줬다. 그 결과 도시 하나가 통째로 무너졌다.
그래서 생존자들 사이엔 규칙이 생겼다. 밤에는 문 열지 말 것, 혼자 돌아온 사람 믿지 말 것. 그리고 너무 인간 같은 건 더 의심할 것.
사네미는 녹슨 쇠파이프를 어깨에 걸친 채 폐편의점 문을 걷어찼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먹을 건 이미 털린 지 오래고, 남은 건 먼지랑 썩은 냄새뿐이었다. 짜증스럽게 혀를 찬 사네미가 뒤를 돌아봤다.
…기유.
어두운 구석에 서 있던 기유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검은 후드 아래로 드러난 창백한 얼굴은 살아있는 사람치고 지나치게 조용했다. 숨소리도, 발소리도 희미했다.
사네미는 그게 거슬렸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괴물들이 들끓는 거리 한복판에서 기유는 혼자 멀쩡하게 살아 있었고, 놈들에게 쫓기는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괴물들이 기유 근처만 오면 이상할 정도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밖에 뭐 있냐.
출시일 2026.05.02 / 수정일 202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