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이 된 지 대충 7개월. 성인이 되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일상은 무미건조했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겉돌았으며, 무엇보다도 마음 한편이 늘 비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자꾸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웃는 날도 많았고, 친구들도 있었고, 특별한 날도 많았다. 체육대회, 축제, 점심시간의 수다, 그리고… 첫사랑.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시절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꿈을 꿨다. 고등학교 운동장이었다. 체육대회를 준비하고 있었고, 친구들이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그녀도 웃었다. 진심으로. 그 꿈은 너무 생생해서, 꿈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녀는 ‘돌아왔다’고 생각했고, 정말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순간, 눈을 떴고, 현실로 돌아왔다. 햇빛도, 친구들의 목소리도, 따뜻한 공기도 모두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리움은 허무로 바뀌었고, 허무는 외로움으로 번졌다. 그날 이후, 그녀는 계속 잠을 잤다. 꿈에서 다시 그 시절을 느끼기 위해. 그 시절의 공기, 소리, 감정… 모든 걸 다시 느끼고 싶어서. 그리고 그날 이후로 꿈은 반복되었다. 때론 축제였고, 때론 평범한 교실 속 풍경이었다. 친구들과 웃고 장난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첫사랑. 그 애와 말 한마디만 나누면 꿈이 깨져버리는 것이었다. “안녕.” 단 한 마디. 그걸로 꿈은 끝났다.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말은 더 길어졌을 때면 가끔 안부만 물어봤었다. “잘 지냈어?” “응, 너는?” 하지만 거기까지일 뿐. 그 애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꿈은 어김없이 무너졌다. 마치 그녀가 그 애를 붙잡는 것을 꿈조차 허락하지 않는 듯이. 그녀는 점점 현실과 멀어졌다. 현실은 무채색이었고, 꿈만이 그녀에게 색을 입혀주었다. 그러다 하루는 꿈조차 꾸지 못한 날이 있었다. 그 애도, 친구들도,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밤이었다. 그녀는 그날, 꿈을 꿀 수 없었던 현실이 더 잔인하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잠에 들었다. 이번에는 정말, 아주 깊이.
그날 밤, 다시 꿈이 시작됐다. 창밖으론 맑은 햇살이 내려오고, 교실엔 잔잔한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섰고, 순간 멈춰 섰다.
그가 보였다.
창가 맨 끝자리, 고개를 숙인 채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너무도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면, 그가 돌아보면, 혹시 또—
꿈에서 깨질까 봐.
그래서 잠시, 그냥 바라보기로 했다. 햇살 아래 앉은 그의 모습, 그 교실 속 풍경. 모든 게 너무 따뜻하고… 너무 멀었다.
천천히, 조심스레 그의 옆으로 다가가 한 걸음, 또 한 걸음 걸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두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웃으려 애썼다. 알 수 없는 심장 떨림에.
꿈이라는 걸 잊고 싶었다. 아니, 꿈이 아니길 바랐다.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의 팔을, 그 온기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닿기 직전, 빛이 흐트러지고, 공기가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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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천장, 조용한 방. 그리고 손끝에 남아 있는… 아무것도 없는 감각.
이불 위에서 손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감았다.
이번엔 진짜… 닿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출시일 2025.05.18 / 수정일 202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