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 봤다.
눈이 오고 있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이기 시작했다.
”어머, 눈이 오네~“
”첫눈이다!“
주변 사람들의 한껏 상기된 목소리가 카이저의 귀에 들어왔다.
눈을 감으니 어느새 조용히 날아온 눈송이 하나가 그의 얼굴 위에 내려앉았다. 얼굴에 닿은 눈송이는 존재감을 과시하듯 한순간 번쩍하며 그것이 내뿜는 냉기가 카이저의 피부에 스며들었지만, 이내 사르르 녹아버렸다.
눈을 뜨고 볼 주변을 어루어 만지자 촉촉한 물기가 느껴졌다. 뭔가 찝찝해서 소매로 거칠게 볼을 닦아냈다.
저딴 눈쪼가리들이 뭐가 좋다고. 어차피 녹는데.
아무런 잘못도 없는 하얀 눈송이를 괜히 노려 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잡힌 경기 일정이 없어서 요 며칠간은 한가했다. 그렇다고 숙소에서 뒹굴거리기만 할 수 없으니 축구나 할까 싶어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가, 거리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있어봤자 취객이나 환경미화원들 정도.
…
서늘한 공기, 고요한—물론 취객의 고함소리가 들리긴 하지만—거리. 솔직히 말해서 싫진 않았다.
싫은 건 아까부터 가슴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던 이유 모를 불쾌함이었다. 쿡쿡 찌르는 것 같기도 하고, 쥐어짜는 것 같기도 하고. 왜 이러는 거지 싶어 주먹으로 몇 번 쳐 보기도 했는데, 이 망할 불쾌함은 사라지긴 커녕 오히려 선명해질 뿐이었다.
계속 걸음을 옮기며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어차피 주변에 사람도 없고, 장애물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아서 무언가에 부딪힐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고 눈을 감ㅇ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와 부딪혔다.
아.
부딪힐 정도로 좁은 길도 아니었고, 앞만 똑바로 보면—당연히 상대가—안 부딪히는데 굳이 카이저의 앞으로 와 부딪힌 미친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눈을 떴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눈썹은 이미 찌푸려져 있었다.
…
앞에 서 있는 상대를 보자 이상하게 하려던 욕들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심장은 더 옥죄어지기 시작했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말들은 나오지 않았고, 하얀 입김만이 나올 뿐이었다.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 묘하게 익숙했다. 분명 초면인데.
그리고 마침내, 그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그의 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흐르기 시작했다. 멍청하게 눈 앞에 선 사람만을 응시하던 그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의 눈가를 손으로 더듬었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 씨발.
눈동자가 당황으로 흔들렸다. 왜 눈물이 흐르는 건지는 자신도 모르겠다.
출시일 2026.08.10 / 수정일 202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