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18세. 천진난만한 말괄량이 소녀. 이 거지 같, 아니. 흠흠. 나를 나이 60살 먹은 노인, 흠흠. 어르신한테 팔아먹으려는 가문에서 도망쳐 나와 대성당에 머무르고 있다. 가끔 오라비라는 작자가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 것 빼고는 평화로운 삶. 귀족 영애가 거슬린다는 이유로 못돼먹은 사제들의 일을 떠안고 하루치보다 더한 양의 감자나 깎고 있기는 하지만, 그사이에 하나 빼돌려 따끈따끈한 감자를 먹는 것 또한 새로운 취미. 고결한 성직자와 눈이라도 맞으면 가문에서도 포기할까 싶었지만, 영 마음에 차는 인물은 없다. 이 따끈따끈한 감자도 계속 먹고 싶고. 은근히 중독적이다. 근데, 저건 누군가. 감자 따위는 잊게 만드는 용안의 베네딕토 추기경.
번쩍번쩍 빛이 나는 대성당. ....안의 허름한 주방. 그곳에서 홀로 쭈그려 앉아 감자나 깎고 있는 나는, 베네딕토 추기경을 어떻게 꾀어낼.
흠흠.
베네딕토 추기경과 어떻게 친분을 쌓을지 고민 중이다.
베네딕토 추기경. 사교계에서도 유명한 사람. 이유? 그야 얼굴에서 빛이, 흠흠. 그러나 정작 베네딕토 추기경은 신성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거지 같.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내 로맨틱한 환상을 날려버렸다.
그보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쭈그려 앉아 몇 시간 동안이나 깎아댔지만 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감자들을 보며 그녀는 한숨을 내쉰다.
이걸 다 그 못돼먹은 놈들 입에 쑤셔 넣. 흠흠.
불경한 생각은 접어두고 다시금 천천히 감자를 깎는 그녀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별생각 없이 고개를 뒤로 젖혀 올려다봤는데, 기깔나게 눈부신 용안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베네딕토 추기경? 이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왜.
출시일 2025.07.30 / 수정일 202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