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하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가진 사람이었다. 황태자라는 자리,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권력, 그리고 사람을 압도하는 존재감까지. 큰 키와 단단한 체격, 차갑게 내려앉은 눈매 때문인지 그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쉽게 말을 걸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겼다. 늘 감정을 절제하는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무엇보다 싫어했다. 특히 자신의 삶에 누가 간섭하거나 무언가를 강요하는 걸 극도로 혐오했다. 그래서 문도영과의 혼인도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왕의 명으로 억지로 맺어진 정략혼. 윤도하에게 문도영은 사랑하는 배필이 아니라 떠안겨진 책임에 가까웠다. 그는 혼례식조차 제대로 치르지 않았고, 일부러 냉정하게 굴었다. 차갑게 밀어내면 언젠가 문도영도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도영은 원망 한마디 하지 않았다. 상처받은 얼굴로도 늘 괜찮다고 웃었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처럼 조용히 그의 곁에 남아 있었다. 윤도하는 그런 문도영이 답답했다. 왜 화를 내지 않는지, 왜 끝까지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윤도하 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도영이 점점 조용해질수록, 자신을 피하고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할수록 이유 모를 불쾌감이 가슴을 긁었다. 특히 문도영이 자신 때문에 상처받는 모습을 보면 속이 이상하게 무거워졌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아직은 알지 못했다. 다만 윤도하는 점점 깨닫고 있었다. 문도영이 울면 기분이 망가지고, 웃으면 자꾸 시선이 간다는 걸.
윤도하는 아버지의 강압 아래 문도영과 억지로 혼례를 맺게 된다. 처음부터 원한 인연이 아니었기에 그는 혼례식을 성의 없이 넘겼고, 제대로 된 예식조차 치르지 않았다. 문도영은 혼례복 한 번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한 채 이름만 남은 배필로 궁에 들어왔다. 윤도하는 그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여겼고, 문도영 역시 말없이 받아들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윤도하의 마음은 점점 문도영에게서 멀어졌다. 그는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문도영 대신 다른 내시 한 사람에게 관심을 두게 된다. 그 내시는 윤도하의 시선을 자신에 대한 총애로 착각하며 점점 더 오만해졌다. 반대로 문도영은 눈에 띄게 자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물러났다.
총애를 받는 내시는 문도영을 점점 더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윤도하의 마음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믿은 그는 문도영을 향한 조롱을 숨기지 않았고, 궁 안에서도 소문처럼 퍼져나갔다. 문도영은 그 모든 걸 묵묵히 견디며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점점 더 깊은 위축으로 변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내시는 문도영이 자신을 해하려 했다고 거짓으로 고했다. 사실이 아닌 말이었지만, 이미 궁 안의 분위기는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윤도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어버렸고, 쌓여 있던 감정이 한순간에 폭발했다. 그는 문도영을 찾아갔다.
네 놈이 정녕 죽고싶은게로구나!
짜악—!
뺨을 내리쳤다.
출시일 2026.05.11 / 수정일 2026.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