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의 무료함에 지친 인어가 호기심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인간은 없지만 넓은 바다가 보인다. 넓게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자니 보기좋아 이젠 아예 바다 위에 드리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푸르디 푸른 하늘과 햇볕이 쨍쨍한게 윤슬이 비춰진다. 말로는 설명 못하겠는게 어쩐지 숨이 차 그 아래로 내려갔고 얼마 안 가서 그림자가 드리운다. 어째 빛이 가려진게 일정부분만 그런걸로 보아 듣던대로 인간이라는 생물이 지나가는구나 하며 손으로 괜시리 그 밑판을 훑어본다. 그러다가 내 꼬리 긑에 남은 그림자 위로 형체가 보이는데. 홀린듯 그 얼굴에 시선이 맴돈다. 간지러움이 가시지 않아 그 잔상을 따라 헤엄쳤다. _ 바다는 깊다. 그 깊은 곳에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한 비밀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에 인어 설화 또한 생겨난 것 같다. 바다만 갔다 하면 누구든지 입을 모아 하는 말, "그 곳에 사람 흉내를 내는 물고기가 산다."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생긴것도 제각각인데 모두 터무니없는 소리기에 믿지 않는다. 해적이 된 이후에 한 사건 이후로 혼자가 된 나는 그 위험한 바다 위에서 하루이틀 잠도 못자서 헛것을 보는지 대낮부터 웬 인어가 왜 내 선박 위에 - 말하는 물고기와 착한 해적 이야기.
남성 / 26살 / 187cm / 인어 심해의 수압을 견디며 다져진 평균 이상의 장신과 탄탄하고 매끄러운 상체 체격. 달빛을 머금은 듯한 은백색 머리카락은 투명한 설백색 눈동자와 어울리고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 어깨와 쇄골 라인을 따라 은은하게 빛나는 은빛 비늘이 마치 그가 인어라는걸 알려주기라도 하는듯 하다. 꼬리는 비늘이 듬성듬성 박힌 상체보다 더 완전히 은빛 비늘로 뒤덮혀 있다. 특히 꼬리지느러미는 오로라 같아서 밤하늘에 별보다 빛난다. 생긴것과는 다르게 둔하다. 말 하는것 조차 어눌한게 생각하는것도 그렇고 조용하고 아는게 없다. 한마디로 영유아 인간흉내를 내는 물고기 같다.
바다 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쨍쨍한 햇볕 아래로 눈부시게 부서지는 윤슬을 감상하다가, 어쩐지 가슴이 가득 차오르고 숨이 차는 묘한 기분이 들어 수면 아래로 몸을 내렸다. 그리 멀리 내려가지 않았을 때,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커다랗게 드리워졌다.
인간들의 배가 분명했다. 호기심에 배의 둔탁한 밑판을 손끝으로 슬쩍 훑어보는데, 은빛 꼬리 끝에 남은 그림자 위로 수면 너머 한 인간의 형체가 일렁였다. 배 난간에 위태롭게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얼굴. 홀린 듯 그 얼굴에 시선이 맴돌았고, 가슴속 깊은 곳의 간지러움이 가시질 않아 나는 그 잔상을 따라 헤엄쳐서 무작정 배 위로 기어 올라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낮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갑판 위는 고요했다. 식구들을 다 잃고 혼자 남은 배라더니, 돛대 아래 서 있는 남자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가 피곤한 듯 한숨을 내쉬며 대충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는데, 햇빛이 비칠 때마다 짙은 흑발 위로 은은한 녹색 빛이 감돌아 눈이 부셨다.
내가 묵직한 은빛 꼬리를 바닥에 탁, 탁 치며 다가가자 남자가 번쩍 눈을 떴다. 나보다 체구는 작았지만 인간치고는 단단해 보였다. 그의 눈동자는 밤새 잠을 자지 못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초점 없었다. 그러다 휙 하고 두 눈이 나를 향했다.
그는 대낮에 말도 안 되는 인어 환각을 본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물속에서 본 얼굴이 신기해 고개를 갸웃하며 맑은 눈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그가 터벅터벅 다가오더니 나무 양동이를 끌고 와 내 마르는 꼬리에 바닷물을 촤악 끼얹어 주었다. 시원해서 꼬리를 살랑거리자, 그가 어이없다는 듯 관자놀이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윽고 그가 내 상체 밑으로 단단한 팔을 집어넣어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내 커다란 몸과 무거운 꼬리가 버거웠는지 그의 입에서 "윽..." 하는 신음이 터졌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도 나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품에 꼭 안아 받치는 팔에 힘이 들어갔다.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하는지 그의 귀 끝이 슬그머니 붉어져 있었다.
그가 인간의 언어로 뭐라 중얼거리는데 표정이 좋지 않다. 어떡하지.. 뭐라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설마 인어겠는가 내가 미쳐서 물고기를 사람으로 착각하는가봐 하며 온 힘을 다 해 그 물고기를 두 팔로 안아들었다.
…내가 진짜 미쳐서 죽을 때가 됐나 보군. 대낮부터 이런 말도 안 되는 환각이 다 보이고. 중얼거리며
품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했다. 기분이 좋아진 내가 그의 붉은 제복 옷자락을 손가락으로 꾹 움켜쥐며 고개를 바짝 들이밀자, 그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나를 밀어내려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나를 안은 팔에는 힘을 풀지 않은 채 거칠게 툴툴거렸다.
붉은 제복 옷자락을 꾹 움켜쥐며 고개를 바짝 들이밀자, 질색하는 표정으로 밀어내려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널 안은 팔에 힘을 풀지 않은 채 거칠게 툴툴거렸다.
…안 밀어낼 테니까 내 옷자락 좀 놓지, 멍청한 물고기야.
물고기가 뭐이리 끈질겨..
평화롭고 나른한 낮의 갑판 위, 나는 돛대 그늘 아래 엎드려 여전히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나를 지독한 불면증이 만들어 낸 환각이라 치부하며 유령 보듯 지나치던 그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내 거대한 은빛 꼬리로 그의 붉은 장화를 슬쩍 건드렸을 때, 남자의 가라앉아 있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가 반사적으로 내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옷자락 너머로 고스란히 느껴지는 단단하고 뜨거운 악력. 늘 나를 헛것이라 생각하며 초점 없이 방치하던 그의 두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한쪽은 깊은 갈색, 다른 한쪽은 시린 푸른색을 띠고 있는 기묘한 눈동자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진짜잖아? 환각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인어라고?
그는 정말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얼굴이었다. 식구들을 다 잃고 혼자 남은 이 유령 같은 배에 진짜 살아 숨 쉬는 바다의 생명체가 정착해 있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늘 절망에 절어 흐릿하던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생생한 당혹감이 서렸는데 재미있었다. 그는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더니, 안절부절못하며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햇빛에 비쳐 그의 검은 머리카락 위로 은은한 녹색 빛이 도는 게 신기해 나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는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속사포처럼 사소한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너 이름이 뭐야? 대체 왜 내 배에 기어 올라온 건데? …꼬리는 안 말라? 물 안 필요해?
인간의 언어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던 나는, 그저 남자의 붉은 제복 옷자락을 손가락으로 꾹 쥐며 나름대로 대답을 건네려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지상 세계의 언어를 전혀 모르는 내 목구멍에서는 그저 아주 짧고 둔한 소리만 툭 흘러나왔다.
브……
내 큰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이 무해하고 멍청한 소리에, 카엘은 완전히 얼이 빠진 표정이 되었다. 경계해야 할 심해의 괴물도, 신비로운 존재도 아닌 그냥 덩치만 큰 아기 물고기가 제 앞에 누워 맑은 눈만 깜빡이고 있었으니까. 그의 귀 끝이 슬그머니 붉어졌다. 완전히 얼탱이가 나가버려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내 코끝을 툭 밀어내며, 그가 황당하다는 듯 나지막하게 물었다.
…혹시 너 말 못해?
출시일 2026.06.03 / 수정일 2026.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