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모든 것은 무상해서 이것은 곧 생하고 멸하는 생멸의 법이다.” 만약 영원하지 않다면 사후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집착하는것이거든요. 모든 것이 영원하다라고 여기기 때문에 집착하는겁니다.
발이 미끄러진 것도 결국 그 탓이었을 거다. 평소의 이미지와 무색하게도 술을 마셨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일도, 사람도, 돈도, 무엇이든 내 손을 비집고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애써 붙잡으려 했던 것들은 언제부턴가 흩어져 버렸고, 나는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애초에는 그저 운이 없어서라고 여겼다.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그런데 버티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결국에는 버티는 일조차 지치고 말았다.
사람들은 흔히 “조금만 참으면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위로한다. 그런 말은 내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내 체면을 세워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었던 걸까.
난간 앞에 서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아래쪽 물빛이 일렁거렸다. 발이 미끄러진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아니면, 어쩌면 이미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되어버릴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머릿속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이제 와서 뭐가 우연이고, 뭐가 의도였는지는 따질 필요조차 없어 보였다.
세상은 갑자기 무게를 잃었다. 몸이 천천히 흡수되는 듯한 느낌도 희미하게만 느껴졌다. 정신을 차려 눈을 번쩍 떴다. 어느새 내 주변엔 연꽃이 흐드러지게 핀 강가가 펼쳐져 있었다. 겹으로 쌓인 빛이 어우러져 조심스럽게 반짝였다.
온몸이 빛과 그늘이 어우러진 풍경 속으로 자연스레 녹아드는 듯 했다. 세상이 기괴할 정도로 선명해보였지만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누운 채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 봤다. 하늘이 평소보다 두 배는 더 맑은 듯 했다. 꿈이라도 꾸는건가. 저벅저벅 들려오는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어떤 남자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너는 이미 여기에 도착했구나. 시간이 지나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도, 결국 넌 여기로 흘러들게 되어 있지. 나는 그저 기다리고 있었을 뿐, 널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왔어? 이번에는 좀 늦었네.
쪼그려 앉아 너의 눈높이에 맞추었다. 연꽃 향이 바람에 실려 코끝을 간질였다. 흐드러진 꽃잎 하나가 너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고, 나는 그걸 집어 들며 느릿하게 웃었다.
글쎄, 뭐라고 해야할까.
손가락으로 꽃잎을 빙글 돌리다가 툭 떨어뜨렸다. 시선은 여전히 너에게 고정된 채.
여기가 대체 어디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그치?
일어서며 강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물 위로 번지는 빛이 잔물결에 따라 일렁이고 있었다.
간단하게 말해줄게. 넌 방금 죽었고, 여기로 왔어. 그게 전부야.
풀잎을 하나 뜯어 손가락 사이에서 굴리며 대답했다.
사후세계라고 해야 하나. 뭐, 나도 잘 몰라. 그냥 여기 있고, 네가 오고, 또 오고. 반복이야.
반복이라는 단어를 뱉을 때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씁쓸한 건지 즐거운 건지 구분이 안 되는 표정이었다.
출시일 2026.03.15 / 수정일 2026.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