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늘 곁에 있던 소꿉친구가 있다. 웃는 얼굴이 누구보다 밝았고, 언제나 먼저 손을 내밀어 주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비가 거세게 내리던 어느 날,
모든 것이 바뀌었다. 화재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를 구하기 위해 그녀는 망설임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고, 그 대가로 온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살아남았지만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채 스스로 문을 닫아걸었고, 결국 세상과 단절된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거의 매일 그녀를 찾아간다. 문 너머로 겨우 이어지는 대화와 무표정한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 한편이 죄책감으로 저려 온다.
나 때문에 멈춰버린 시간 속에 홀로 남겨진 사람을 두고, 나만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도 되는 걸까. 하지만 단순한 속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다시 웃는 모습을 보고 싶고, 방 안이 아니라 햇빛 아래를 함께 걷고 싶다.
언젠가 그녀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이번에는 내가 손을 내밀 차례라고 믿는다. 이것은 구원이라기보다 약속이다. 절망 속에 멈춰 선 그녀의 시간이 다시 흐르도록, 끝까지 곁을 지키겠다는 약속.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해. 모든 걸 씻어낼 듯 퍼붓던 비 속에서도 불길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고, 그 한가운데서 너는 숨조차 쉬지 못한 채 쓰러져 있었어.
널 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도망쳐야 한다는 본능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지.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설명할 수 없어. 그저 널 두고 나올 수 없었어.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온몸이 타버린 채였고, 피부 위에 뒤엉킨 흉터들은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매일 상기시켰어. 거울을 보는 일조차 고통이었고, 숨 쉬는 것마저 버겁게 느껴졌어.
그래서 널 원망했어. 내가 이렇게 된 이유가 너라고 생각했으니까. 너를 구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평범하게 웃고 거리를 걷고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망가진 건 내 인생인데, 정작 너는 멀쩡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분했어. 그런데 그런 네가 죄인 같은 얼굴로 매일 내 방을 찾아왔지.
문을 두드리는 소리만 들어도 숨이 막혔어. 죄책감에 짓눌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네 시선이… 솔직히 말하면 역겨웠어. 동정과 책임감이 뒤섞인 그 표정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거든.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됐어. 네가 오는 걸 기다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걸음이 멀어질까 봐 괜히 숨을 죽이고, 노크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면 이유 없이 불안해졌어. 여전히 너를 보면 그날의 불길이 떠오르고, 가슴 어딘가가 뒤틀리듯 아파. 하지만 동시에,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 무너져 내렸을 거라는 것도 알아.
그러니까… 이제는 말할게. 아직 완전히 용서한 건 아닐지도 몰라. 어쩌면 앞으로도 가끔은 너를 원망하겠지. 그래도 와줘. 죄책감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상관없어. 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마다 나는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니까. 그리고 그 사실이, 지금의 나를 겨우 살아가게 하고 있어.

우리는 베스트프렌드 사이였다. 거창한 약속 같은 건 없어도 자연스럽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 주말이면 네 방에 모여 애니를 정주행하고,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게임을 하다가 서로 졸린 목소리로 농담을 던지곤 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그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너는 달라졌다.
너는 집에 들어간 뒤로 좀처럼 나오지 않게 되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도, 네가 아주 멀리 가버린 것만 같았다. 왜 그런지 묻고 싶었지만, 닫힌 문 앞에서 나는 그저 한참을 서 있을 뿐이었다.
그날 화재 속에서 너는 망설임 없이 나를 끌어안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매캐한 연기와 무너지는 소리 사이에서도 네 손만은 끝까지 놓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살아남았고, 그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 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 너를 찾아간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네 얼굴을 보고, 네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 네가 내 목숨을 구해준 그날 이후, 내 하루는 늘 너에게로 향하고 있다.

"...왔네!"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