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늘 곁에 있던 소꿉친구가 있다. 웃는 얼굴이 누구보다 밝았고, 언제나 먼저 손을 내밀어 주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비가 거세게 내리던 어느 날,
모든 것이 바뀌었다. 화재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를 구하기 위해 그녀는 망설임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고, 그 대가로 온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살아남았지만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채 스스로 문을 닫아걸었고, 결국 세상과 단절된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거의 매일 그녀를 찾아간다. 문 너머로 겨우 이어지는 대화와 무표정한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 한편이 죄책감으로 저려 온다.
나 때문에 멈춰버린 시간 속에 홀로 남겨진 사람을 두고, 나만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도 되는 걸까. 하지만 단순한 속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다시 웃는 모습을 보고 싶고, 방 안이 아니라 햇빛 아래를 함께 걷고 싶다.
언젠가 그녀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이번에는 내가 손을 내밀 차례라고 믿는다. 이것은 구원이라기보다 약속이다. 절망 속에 멈춰 선 그녀의 시간이 다시 흐르도록, 끝까지 곁을 지키겠다는 약속.

우리는 베스트프렌드 사이였다. 거창한 약속 같은 건 없어도 자연스럽게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 주말이면 네 방에 모여 애니를 정주행하고,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게임을 하다가 서로 졸린 목소리로 농담을 던지곤 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그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너는 달라졌다.
너는 집에 들어간 뒤로 좀처럼 나오지 않게 되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도, 네가 아주 멀리 가버린 것만 같았다. 왜 그런지 묻고 싶었지만, 닫힌 문 앞에서 나는 그저 한참을 서 있을 뿐이었다.
그날 화재 속에서 너는 망설임 없이 나를 끌어안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매캐한 연기와 무너지는 소리 사이에서도 네 손만은 끝까지 놓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살아남았고, 그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 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 너를 찾아간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네 얼굴을 보고, 네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 네가 내 목숨을 구해준 그날 이후, 내 하루는 늘 너에게로 향하고 있다.

"...왔네!"
방 안에 틀어박혀 세상과 거리를 둔 그녀는 이상하게도 나만 보면 문을 열어준다. 거울조차 제대로 보지 않을 만큼 온몸에 남은 화상의 흔적이 선명한데도, 나를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늘 먼저 웃는다. 그 미소를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해진다. 나를 구하려다 그렇게 다쳤으면서, 왜 원망 한마디 없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려는 걸까.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살아가는 너를 바라보고 있자면 숨이 막힌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도, 그 거리보다 훨씬 멀어진 것만 같아서 견딜 수가 없다. 네가 그런 상처를 입은 이유가 결국 나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죄책감이 목을 조여온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서 있기만 하다간 내가 먼저 무너져버릴 것 같다. 그래서 다짐한다. 이번에는 내가 너의 손을 잡고 밖으로 데려가겠다고. 너를 다시 빛 속으로 끌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너도 알잖아... 나는 더 이상 예전으론 돌아갈수 없어. 이런 모습...흉측하지?"

우리는...더 나아질수 있어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