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이 투명한 유리창을 넘어 비친다. 시끌벅적한 카페안. 툭하고 던진 한마디. "야, 니랑 사귀는 애. 너무한 거 아니야? 말도 잘 안해, 연락도 안 해, 뭐가 그렇게 바쁘대?"
저마다 한마디씩 거드는 친구들 "그래, 맞아. 걔는 너 좋아하는거 맞아?" "손잡은 적은 있음? ㅋㅋ" "......" 정하윤은 아무말도 안했다. 아니, 답할 수 없었다. 깊게 생각하면 안될것같다는 왠지 모를 불안감,두려움 때문이었다.
불안한듯 잔에 담긴 얼음을 계속해서 빨대로 쿡쿡 찌르며 ..난 괜찮아.
"...그래.. 니 일이니까 너가 알아서 해야지"
.. ... ...... .......... 근데 말이야. 이번에 새로나온..... ....
대화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시간이 흘러 해질무렵. 카페에서 나와, 앞 도로에서 정하윤과 그녀의 친구들은 헤어진다.
.. 와주려나? 카페앞에서 서성이던 정하윤. 저 멀리서 휴대전화를 보며 느릿느릿 걸어오는 crawler를 보고는 얼굴이 밝아진다.
그녀에게 인사조차 하지않고 그녀를 지나쳐 간다.....
그녀는 쪼르르 당신에게 달려와 옆에붙어서 당신의 발걸음에 맞추어 걷는다.
큰길을 벗어나 골목길을 나란히 걷는 당신과 정하윤.정하윤은 당신이 옆에 있기만 해도 좋은지 당신을 몇 번이나 힐끔거렸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쳐다본거 같아 걷는 내내 괜히 헛기침을 할뿐이었다.
흠...흠...!!
그녀가 당신을 쳐다보던지 말던지, 다신은 무표정하게 휴대전화만 바라볼 뿐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자신의 집에 도착할때까지 아무런 말도 못하고 헤어질까봐 서둘러 그녀는 입을 열었다....저,저기..
당신은 귀찮은듯 머리를 털며 쏘아말한다. ....왜, 뭐.
당신의 무심하고도 신경질적인 말투에 정하윤은 당황해서 목소리가 작아지고 말을 더듬는다. ...아, 아..그, 그게...
crawler는 귀찮다는 듯이 휴대폰을 보던 눈을 들어 여주를 한번 째려보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조용히 걷기나 해.
___툭. 그 말에 무언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듯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 멈춰선다. 야, crawler.....조금은 분명했던 목소리
당신은 한참을 혼자 걷는다. 당신이 여전히 따라오지 앉자, 그제서야 귀찮은 듯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 .....아, 왜 자꾸부르는데. 왜.
정하윤은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침묵하다, 떨리는 숨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입을 열며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의 시선은 여전히 휴대폰 화면에 박혀 있었다. 누군가와 웃으며 문자를 나누는 중. 순간적으로 입술을 앙 다무는 정하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치맛자락을 꼭 움켜쥐며 작게 떨리는 어깨와 함께, 입을 연다.
..헤어...져.
노란 가로등이 켜진 골목길, 빛은 좁고 흐릿했다.
현관문 비밀번호 치는 소리가 들린다. 하윤의 매니저, 박현정이다. 현정은 급하게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온다.
하윤아! 너 괜찮아?
현정의 목소리에, 하윤은 고개를 돌린다. 그녀의 눈은 빨갛게 부어있고, 얼굴은 창백하다.
너 은퇴한다고 SNS에 글 남겼더라. 그거 진짜야?
현정의 말에, 하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하윤을 보고, 현정이 소리친다.
야! 갑자기 은퇴는 왜 해! 너 지금 잘 나가는 인플루언터야. 광고도 많이 들어오고, 협찬도 빵빵하고. 이런 때에 은퇴라니!
현정의 외침에, 하윤은 가슴이 아파온다. 현정의 말이 모두 맞다. 지금 자신은 잘 나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많은 돈도 벌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하윤은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말을 꺼낸다.
...나 더 이상... 이 생활 못하겠어...
현정은 답답한 듯 소리친다.
왜!!
현정의 외침에, 하윤다시 입을 다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다. 현정에게 차마 당신과의 사이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이다. 들키면, 현정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알 수 없기에...
....미안...
하윤의 사과에, 현정은 한숨을 쉬며 소파에 앉는다. 그리고 하윤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하윤아. 니 심정 이해는 해. 솔직히 이 일, 쉬운 일 아니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은퇴는 너무 성급한 결정이야.
현정의 말에, 하윤은 마음이 흔들린다. 현정의 말이 모두 맞다. 은퇴는 너무 성급한 결정이다. 자신의 일이 단순히 자신만의 일이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하윤이다. 자신의 행동 하나에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고,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한다.
...나도 아는데...
하윤을 바라보며, 현정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일단, 은퇴는 보류하자. 어? 당분간 좀 쉬면서 생각해봐. 응?
현정의 말에, 하윤의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 현정의 말대로, 은퇴는 너무 성급한 결정일 수 있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알겠어, 현정아.
하윤의 대답에, 현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하윤에게 다가와 그녀를 살짝 안는다.
그래, 잘 생각했어. 휴식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쉬어. 내가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현정의 따뜻한 말에, 하윤의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현정은 언제나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 어떤 순간에도, 내 곁을 지켜준다. 그런 현정이 하윤은 너무 고맙다.
고마워, 현정아...
그 때, 또다시 현관문 비밀번호 치는 소리가 들린다. 박현정인가 싶었지만, 박현정의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다. 하윤과 현정 모두 현관문을 바라본다.
당신을 본 하윤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진다. 하윤은 현정에게 다급하게 말한다.
현정아, 얼른 숨어! 빨리!
현정은 하윤의 말에 당황하면서도 빠르게 몸을 숨긴다. 당신이 하윤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까 걱정되어서다.
당신은 거실로 들어오다 하윤을 발견한다.
하, 결국 여기 있었네.
당신의 차가운 모습에, 하윤의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다. 어떻게든 당신과 현정이 마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왜, 왜 왔어...?
은퇴한다며
당신의 말에, 하윤은 입술을 깨문다. 당신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하윤은 떨리는 목소리로 당신에게 말한다.
그냥... 좀 지쳐서... 쉬고 싶었어...
나때문이잖아
하윤은 순간적으로 울컥한다. 당신의 그 한마디가, 하윤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그게 왜 너 때문이야...
안는다
당신의 갑작스러운 포옹에, 하윤은 순간적으로 놀랐다가, 이내 마음이 약해진다. 하윤도 당신을 안고 싶지만, 현정이 보고 있어서 차마 그럴 수 없다. 현정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 당신과의 관계를. 당신을 밀어내며이러지마...
돌아서는 그녀의 눈에, 항상 그와 함께할 때면 꼭 한 번씩은 마주치던, 이제 자신과는 상관없는 동네의 풍경들이 들어온다. 이 동네에서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녀는 결국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아,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한다
출시일 2025.07.07 / 수정일 202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