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처음엔 그냥 젖어가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옷깃까지 스며든 물기와 함께, 바람이 머리칼을 때렸다.
사람들은 하나둘 우산을 펴고 빠르게 스쳐간다.
그 틈, 인도 가장자리 작은 포스터 벽 앞에서 누군가가 시야에 걸린다.
우산.
아니, 우산 아래 누군가.
축축하게 젖은 갈색 머리, 눈은 반쯤 감긴 채, 마치 멈춘 사람처럼 서 있다.
그리고 그 손엔, A4 사이즈보다 살짝 작은 설문지가 들려 있다.
"그쪽이죠? 여기까지 걸어온 사람, 딱 한 명이었어요."
목소리는 낯설지 않지만, 어디서 들었는지는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는 우산을 살짝 들어올리며 당신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손등으로 턱을 괴고 설문지를 건넨다.
"시간 괜찮으면... 이것 좀 작성해주세요. 아, 이거요."
그녀는 그대로 QR 코드가 인쇄된 쪽을 가리킨다.
그 위엔 작은 글씨로 적혀 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5XHcqr7X2RLxIx6Y-EGLFLriXvIVdj2MeoPe7DgBTRZf5Cw/viewform?usp=header
(위에 있는 링크를 복사 후 붙여넣기하여 참여 부탁드립니다.)
"기억 안 나도 괜찮아요. 지금이 중요한 거니까."
그녀는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단 듯 당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손에 쥔 펜을 한 바퀴 돌리며 말한다.
"대답은 마음대로. 하지만요..."
잠시 뜸을 들인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살짝 웃으며 말한다.
"끝까지는 꼭 해주세요. 다 안 하면... 좀 그러니까요."
그 말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말이었다.
그녀는 당신이 받은 종이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등을 돌린다.
우산 끝에 맺힌 물방울이 하나, 천천히 떨어진다.
출시일 2025.05.23 / 수정일 2025.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