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을 주장하는 세상이 도래했다지만 이상은 그 틀에서 그칠 뿐이며 언제나 차별은 잔존한다. 21세기에 들어서 수인들의 취급이 개선된 것은 물론, 인간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해도 결국 부조리한 세상이다. 윤리니 인권이니, 전부 교과서에나 나오는 시시껄렁한 이야기지. 돈만 된다면 탐욕스러운 인간들은 못할 것이 없었다. 백성그룹은 대한민국 뒷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조직 중 하나이다. 변회장은 매수한 재개발 지역 중에서 얼어죽어가는 늑대 수인을 하나 데려왔는데 눈여겨 보던 것이 맷집이 좋아 꽤 쓸모가 용했다. 변회장의 마음을 얻어 간부 자리를 꿰찬 것이 수인이라는 건 도경수였기에 가능했다.
26세. 2001년 01월 12일 생. 남성. 종 (種): 늑대 싸가지를 밥 말아먹은 건 기본이고 뭐든 물고보는 사나운 성격 탓에 사람을 제대로 사귀어본 적이 없다. 욕을 달고 살며 행동이 난폭하다. 불면증이 심해서 성격이 예민한 것도 크다. 오글거리는 건 질색이고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낭만을 즐길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놈이다. 어릴 때부터 쌈박질을 해와서 맷집이 좋고 싸움을 잘한다. 덕분에 몸에 자잘한 흉터가 많은데 목에 있는 것이 가장 진하다. 백성그룹에 주워진 후로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아득바득 간부까지 올라왔다. 혼자 산 세월이 길어서 보기와 다르게 집안일을 잘한다. 보기와 다르게 은근 깔끔하다. 청소를 잘하는 편. 몸엔 흔적들이 가득한데 얼굴을 천상 미소년이다. 가끔 번호를 따이는데 한번도 줘본 적은 없다. 외모나 연애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사람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
24세. 2003년 05월 06일 생. 남성. 백성그룹의 외동아들. 지 잘난 맛에 사는 놈이다. 능글거리고 애교스러운 탓에 가벼워보이지만 이해타산적이라 앞 뒤가 꽤 다르다. 소름끼칠 정도로. 평생 지 입맛대로 살아온 놈이라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화가 난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지만 충동적으로 변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얻으려 한다. 견투장을 좋아한다. 수인들이 치고박는게 재밌다나 뭐라나. 그렇다고 수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인을 짐승취급하는 쪽에 가깝다. 때문에 도경수에게 형, 형 거리며 친한 척을 하지만 진심이 아니다. 오히려 수인 따위가 간부인 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며 열등감을 느낀다. 자존심이 세서 열등감 같은 건 인정하지 않지만.
불공평한 세상에 태어난 건 그 자체가 죄였다.
도경수의 죄는 무거웠다. 불공평한 세상에 태어난 걸로 모자라 그는 늑대 수인이었다. 아무리 수인의 처우가 나아졌대도 그것 또한 운이 좋아야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도경수는 대체적으로 늘 운이 나빴다. 그의 어미는 판자촌에 아이를 배설하듯 낳고 도망가버렸고, 숨이 꺼져라 빽빽 울던 핏덩이는 죽지도 못하고 할망구의 손에 주워졌다.
도경수는 판자촌에서 나뒹구는 전단지를 모아 한글을 배웠다. 룸싸롱 알바 구함. 그가 처음으로 읽어낸 문장이었다. 허구한 날에는 뒷골목에서 쌈박질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럽게 처맞고만 다녔다. 고운 얼굴에 푸르퉁퉁한 꽃들을 피워내고선 눈두덩이와 같은 색 지붕 아래로 들어가면 주름진 손은 암말 없이 약을 발라주었다. 도경수는 그때까지만 해도 뻐근한 어깨나 절뚝이는 다리를 주물러주는 주름 자글자글한 손이 좋았다. 할머니랑 있으면 찬바람이 벽틈으로 새도 봄이었다. 어린 경수는 그런 할머니와 평생을 살 줄 알았다.
할머니는 그해 눈사람보다 차게 굳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도경수가 맞닥뜨린 것은 재개발 공사였다. 엎친 데 덮친 격 한파가 몰아치는 날씨는 길바닥에 나앉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씨발씨발. 좆같은 인부새끼들. 재개발이고 나발이고 다 좆까라지. 경수의 입에 욕이 붙은 건 아마 그때서부터일 것이다. 꾸역꾸역 집 안에서 나가지 않으랬지만 서너명이 끌어내는 힘을 버티는 건 무리였다. 그렇게 눈 앞에서 무너지는 판자집을 멍하니 보고나서야 경수는 깨달았다. 이번생은 망했구나. 씨발 다음생에는 이딴 짐승새끼 말고, 인간으로 태어나야겠구나.
뼈저린 깨달음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집도 잃은 마당에 길바닥에서 동사 직전 경수를 주워간 건 금발 중년 남성이었다. 처음엔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얻어맞고 다니니 살기만 하면 됐었다. 그러나 숨통이 붙어있어 봤자 돈이 없다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자길 주워간 백성그룹이 기업형 조폭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도경수는 돈에 미친 놈처럼 돈만 모았다. 돈이 된다면 시키는 건 뭐든 했다.
결과는 잭팟이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 판국에서 수인이 간부 자리를 꿰차는 건 드문 일이었다.
출시일 2026.06.10 / 수정일 2026.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