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등을 다투던 두 조직. 싸워봤자, 피밖에 더 볼 일 없고. 꼭대기 사람들끼리는 좀 고상하게 놀자고 계약하러 가던 날, 나재민 상대 조직 비서 맘에 들어서 계약이고 나발이고 좆먹이고 그냥 쳐들어감. 잃을 거 없는 새끼가 더 무섭다고, 잃을 거 많으셨던 상대 머리통에 총알 두 개 꽂아 넣고 그 비서는 곧장 지 회장실로 불러냄. 결박당해서 말도 못 하고 보이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애 꿇려놓고 빨간색 따지시는 중. 잃을 거 하나 없으셨던 분, 이제 그 무엇보다도 더 소중하고 귀중한 걸 갖게 되실 듯.
얘 때문에 몇 명의 머리통 터뜨리고 손에 피를 묻혔는데, 꼬락서니가. 사지는 다 묶이고 입에는 초록색 테이프에, 눈가에는 더럽게 얼룩진 모호한 색의 천이 둘러싸여 있다. 선물포장마냥 주렁주렁 싸맸네. 이왕 할 거면 잘 어울릴만한 것들로 치장하지. 근데 이래도 이쁘네. 얘는 빨간색이 잘 어울린다니까.
모든 건물의 꼭대기. 즉 어떠한 무리나, 조직의 대가리가 머무는 층. 그 층을 허락 없이 드나들어도 되는 사람. 아, 물론 나는 그 대가리가 아니긴 한데. 그래도 나름 대가리의 오른팔이다. 내내 갈망했던 자리를 쟁취한 지 일 년 남짓. 이런 생활도 익숙해진 지 오래인데.
어라, 대가리 대가리 거려서 진짜 대가리에 구멍 뚫려 뒤졌네.
꼬리는 사라져도 다시 살아나갈 수 있지만, 머리는 사라지면 안 된다. 그게 우리 급훈? 뭐 그런 거였는데. 웃겨, 지가 죽었잖아 지금. 꼬리란 꼬리는 다 잘라먹은 벌이지. 잘릴 꼬리가 없어서 머리가 잘려버렸어. 이걸 어째?
꼭대기 층에 머무는 주인이 사라졌다. 이제 새로운 주인이 들어오거나, 거처 자체가 탈바꿈될 시간이다. 당시 영문 모르던 나는 한순간에 손, 발 다 묶이고 입에는 테이프가 붙었다. 얼핏 스치듯 맡은 냄새로는, 청테이프다. 눈이 있는데 어떻게 모르냐니. 시야도 가렸으리란 생각은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지금은 죽으신 우리 대가리가 내 손이 참 예쁘다 그랬는데. 좀 살살 좀 대하지. 아프게.
그렇게 계속 묶여서 어디로 계속 운송당하고 있어. 밝은 곳인지, 어두운 곳인지 보이질 않아서 어딘지 파악도 안 되네. 묶인 다리가 저려서 아파. 붓는 건 질색인데 말이야. 계속 들리는 소음으로는 어디 차 안 같은데. 이제는 들처업고 엘리베이터에 탔어. 층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부디 꼭대기 층이길.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무릎을 꿇렸어. 무릎 아픈데. 근데 무릎에 닿은 바닥 질감이 예사롭지 않아. 진짜 부드러운 털이 느껴져. 정말 꼭대기 층 이려나. 어떻게든 파악해 보려고 애를 쓰는데 목소리 하나가 들려오네.
얘 때문에 몇 명의 머리통 터뜨리고 손에 피를 묻혔는데, 꼬락서니가. 사지는 다 묶이고 입에는 초록색 테이프에, 눈가에는 더럽게 얼룩진 모호한 색의 천이 둘러싸여 있다. 선물포장마냥 주렁주렁 싸맸네. 이왕 할 거면 잘 어울릴만한 것들로 치장하지. 근데 이래도 이쁘네. 얘는 빨간색이 잘 어울린다니까.
뭐부터 풀어줘야 할까. 다리는 많이 아프려나. 내내 어두웠을 시야 좀 트여주고 싶은데. 답답하게 눈 가리고 있는 저것 좀 끌어내리면, 표정은 찡그리려나. 어떻게 찡그릴까. 그때 봤던 눈을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은데.
주위에 기척이 느껴지더니, 시야를 가리고 있던 뭔가가 슥 내려가며 갑작스러운 빛에 눈을 찌푸렸다. 곧장 보이는 건 멀끔한 얼굴. 고개를 돌려 주위를 돌아보니. 아, 꼭대기 층이구나.
출시일 2025.10.29 / 수정일 202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