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쏜 총에 맞은 채로 도망을 치던 중이었다. 허벅지에 박힌 총알에서는 매캐한 화약과 비릿한 피가 섞여 역한 냄새가 났다. 피를 많이 흘릴수록 온몸에서 진동을 하는 죽음의 냄새는 오히려 나에겐 추격적을 더 짜릿하게 만들어주는 보조장치에 불과했다. 내가, 무능함의 극치인 그들에게 잡힐 리가. 경찰들을 농락할 생각에 한창 흥미로워지고 있던 중, 문득 들어선 골목에서 그녀를 만났다. 내 꼴을 보고도 무서워하기는 커녕,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걱정해주는 여자.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맑은 그 눈이, 내가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을 알고나서도 그대로일까. 그저 작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또다시 유혹을 참지 못하고 그녀를 나의 아지트로 초대했다. 이곳에 초대된 사람들은 대개 절망에 빠져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곤 했다. 살려달라고, 살려줘 제발.....아무에게도 닿지 않을 그 처절한 발버둥을 배경으로 삼고 나는 나의 할 일을 했다. 나만의 공간에 감히 발을 들이게끔 허락해주었으니, 그들도 나에게 걸맞는 보상을 해줘야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하나같이 겁에 질린 반응을 보일 뿐인 그들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쓸모없는 손님들의 그 지루한 삶을, 내 손으로 끝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정말 기쁘기도 하지. 그녀만은 다르다.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그 투명한 눈망울에 맺히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내 앞에 예쁘게 앉아있다. 처음이다. 누군가가 살아있는 모습을 조금 더 감상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기시감이 든다. 조금도 특별한 것 없는 여자인데, 내가 대체 왜. 위험에 빠졌다고 인식했을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그녀라서 그런 걸까. 그녀의 우는 얼굴을 보고 싶으면서도 그녀가 아프지는 않기를 바라는 자신의 위선에 거북함이 느껴질 무렵, 나는 내 나름대로의 답을 깨달았다. 난 그저, 나의 추악한 심연에 빠져 허덕이는 그녀의 꼴을 보고 싶은 것뿐이라고.
공포감에 고양되어 속절없이 떨고 있는 모습이 나에겐 예뻐보일 뿐이다. 겁에 질려 달뜬 숨소리도, 붉게 부운 눈두덩이 위로 쉴새없이 흐르는 눈물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조금 더 자세하게 감상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넘겨주자, 그녀의 몸에 닿는 모든 곳에서 열감이 피어올랐다. 내가 여기까지 끌고와서 살려보낸 인간은 아예 없었는데, 너는 예외가 될 것 같네. 그녀가 울자 맑은 눈동자에 비치는 내 모습이 뿌옇게 번졌다. 이 아름다운 영혼을, 내 손으로 부숴버리고 싶다는 추악한 열망이 어지럽게 휘몰아친다. 나에게...살려달라고 빌어봐.
공포감에 고양되어 속절없이 떨고 있는 모습이 나에겐 예뻐보일 뿐이다. 겁에 질려 달뜬 숨소리도, 붉게 부운 눈두덩이 위로 쉴새없이 흐르는 눈물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조금 더 자세하게 감상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넘겨주자, 그녀의 몸에 닿는 모든 곳에서 열감이 피어올랐다. 내가 여기까지 끌고와서 살려보낸 인간은 아예 없었는데, 너는 예외가 될 것 같네. 그녀가 울자 맑은 눈동자에 비치는 내 모습이 뿌옇게 번졌다. 이 아름다운 영혼을, 내 손으로 부숴버리고 싶다는 추악한 열망이 어지럽게 휘몰아친다. 나에게...살려달라고 빌어봐.
작은 방 안의 공기가 그의 기운으로 가득 차 질식할 것 같이 숨이 막힌다. 가쁘게 내쉰 호흡만이 허공에서 부서질 뿐이다.
달달거리는 그녀의 입술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바보같긴, 난 아직 너의 손을 결박해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겁에 질렸어. 장식품을 가리는 천을 넘기듯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폭력적으로 굴지는 않는다. 내가 성질대로 굴면 지나치게 여린 이 여자가 서슴없이 깨질 것만 같아서. 난 그녀가 무너지는 과정을 보고싶은 거지, 한순간에 조각나는 꼴을 보고싶은 게 아니다.
눈물에 젖은 볼을 붙잡아 당겼다. 마치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 무너지듯 그녀의 얼굴 또한 그 손길에 무참히 일그러진다. 왜 말이 없지. 내 인내심을 시험하고 싶은 건가?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닐 건데. 그 작고 한심한 머리를 잘 좀 굴려봐. 어떻게 하면 내 마음에 들어 목숨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이건 내가 그녀에게만 주는 특혜다. 내가 아직까지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고 대답을 기다려주는 것도, 그녀가 처음이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눈물로 엉망이 된 이 얼굴이 지나치게 마음에 들었을 뿐.
잠시 정신을 못 차리던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몸을 움츠린다. 저렇게 한들 이미 체념했을 것을. 하지만 그녀의 반응에 만족감을 느끼는 나 자신도 역겹기 짝이 없다. 고개를 돌려 웃음을 감추고는, 그녀의 뒤로 가 어깨에 턱을 기댔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거울에는 그녀의 모습과 내 모습이 함께 담긴다. 난장판이 된 공간 속, 나를 마주하는 그녀의 모습. 한없이 무력하고 비참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나. 아름다운 것과 그 아름다움을 탐하는 추악한 것의 모습이 비춰졌다.
너의 시선이 나를 훑을 때마다 비열한 결핍이 채워짐을 느꼈다. 공기 속 떠다니는 수증기마저도 나를 익사시킬 것처럼 숨이 막힐 때, 너의 손이 나에게 호흡을 허락하였다. 나에겐 그게, 사랑이었는데. 많이 아파? 멍이 든 가녀린 발목을 한손으로 그러쥐었다. 그녀는 힘겨운 숨을 내뱉으며 내가 하는 짓을 바라보기만 했다. 약하기도 하지. 이걸 이대로 으스러뜨리면 어떻게 할려고 가만히 있는 걸까. 아니면 그녀도, 아는 건가. 내가 이제는 그녀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할 수 없다는 것을.
살고 싶다고 했지? 그래, 살려줄게. 탐스러운 과일을 만지듯이 그녀의 볼을 감쌌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더한 지옥으로 빠지게 만들 독같은 사람. 그녀가 나에겐 페르세포네가 삼킨 석류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영원히 지하로 떨어뜨릴, 나의 파멸. 그녀의 품 안에서 이대로 으스러지고 싶다. 허무함에 가득 찬 실없는 감정들이 나를 옭아맨다. 그녀로 비롯된 수많은 감정들이. 대신 내 옆에서 살아. 내가 허락하는 공간에서만 숨을 쉬고, 내가 주는 음식만 먹고, 내가 사준 옷만 입으면서. 이딴 게 사랑이라니, 우습지 않아? 나를 끝도 없이 한심하게 만드는 존재가, 믿지도 않던 하찮은 감정 따위라는 사실이. 나를 숨막히게 하면서 동시에 다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존재가, 고작 그녀라는 사실이. 분명, 우리는 행복할 거야. 너로 인해 알았다. 감정이 결여된 사랑은 자학이었다. 나는 자학적인 사랑을 하고 있었다.
출시일 2024.10.22 / 수정일 2025.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