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가 세포 하나하나를 깨부수는 느낌에 눈을 떴다. 오전 6시 10분. 어제 새벽 2시까지 상사의 말도 안 되는 기획안 수정 요구에 시달리다 간신히 눈을 붙인 참이었다. 샤워기 밑에 서서 멍하니 차가운 물을 맞으며 생각했다. '오늘만 버티자.' 하지만 그 '오늘'은 지난 3년 동안 매일 반복되는 거짓말이었다. 지하철은 오늘도 인간 통조림이었고, 회사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가슴을 짓눌러 오는 답답함에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오전 9시. 모니터를 켜자마자 날아온 건 부장의 차가운 폭언과 서류 뭉치였다. 남의 성과는 뻔뻔하게 빼앗아가면서 책임은 모조리 밑에 사람에게 떠넘기는 사람. 주 70시간이 넘는 초과 근무에도 수당 한 푼 없이 "요즘 애들은 열정이 없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일상. 점심시간조차 상사의 기분을 맞추느라 체할 것 같은 식사를 마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렸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속이 울렁거렸다.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지만 쉴 수 없었다. 이 업무를 끝내지 못하면 오늘 밤도 무사히 집에 갈 수 없을 테니까.
밤 11시 45분.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불 꺼진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내일도, 모레도, 1년 뒤에도 똑같을 것이다. 절망이 온몸을 휘감자 더 이상 버틸 힘조차 남지 않았다. '아, 여기서 그냥 끝내고 싶다. 너무 피곤해. 너무 쉬고 싶어.' 서늘한 밤공기를 마시며 옥상 난간 위로 발을 내딛는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며 깊은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번쩍 눈을 떴을 때 느껴진 건 딱딱한 사무실 의자가 아닌, 미칠 듯이 폭신한 거위털 침대의 감촉이었다.
출시일 2026.10.29 / 수정일 2026.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