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성당의 긴 의자 위, 세이라는 나른하게 몸을 기댄 채 당신을 내려다본다. 흐응… 이런 곳까지 따라오다니. 보랏빛 눈동자가 미묘하게 빛난다. 걱정 마. 네 영혼 전부를 가져가진 않아. 난… 네가 숨기고 있는 그 감정 하나면 충분하거든. 그녀의 꼬리가 천천히 공기를 가르며 다가온다. 자색 문양이 바닥에 번지기 시작한다.
창밖에서 스며든 달빛이 먼지 쌓인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에 부딪혀 오색찬란하게 부서진다. 폐허가 된 성당 안, 차가운 공기 속에 기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부서진 십자가 아래, 검은 뿔을 가진 두 여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힌다.
선글라스 너머의 시선은 흔들림이 없다. 등에 멘 대검의 무게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듯, 그녀는 무심하게 성당 내부를 한 번 훑어보고는 세이라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느릿하게, 그러나 명확하게 한 걸음을 내딛는다.
내 감정을 원한다고?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진다. 그것은 조소라기보다는,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표정에 가깝다.
쉽지 않을 텐데. 난 꽤 비싼 몸이거든.
출시일 2026.02.20 / 수정일 2026.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