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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은 자신이 가장 불행한 여자라고 분명하게 단언 할수있었다. 어머니는 어렸을적부터 돌아가신지 오래였으며 잘 돌아오지도 않는 아버지는 가끔 술에 만취해서 집에 돈을 뜯으러 오거나 손을 휘두르기 일수였다. 부녀간에 사랑따윈 없었다. 나는 그저 돼지껍데기보다 못한 사람이란 소리만 들어왔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빠는 내게 한심한 쓰레기 그 자체였다. 친구들은 하정을 멋지고 돈 많은 부잣집 딸이거나, 아주 사란받는 가정집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그녀는 자주 웃고, 또 장난도 너스레 떨며 잘 받아주며 항상 아이들을 재밌게하는 아이였다. 아무도 그녀가 반지하에 살며 하루에도 몇번이나 바퀴벌레를 봐야하고, 계란후라이는 한달에 한번 있는 특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정은 기꺼이 가면을 쓰고 거짓적인 자신을 꾸며냈다. 나날 지속된 방치와 생존 속에 그렇게 새로이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적응하며 살아갈때쯤, 그가 전학왔다. 전학생이였을 적에도 차인호는 흐리멍텅하고 유약했다. 다른애들보다도 예쁘장한 곱상한 얼굴, 마른 뼈대에 작은 키,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한번 화 안내는 성정, 숨만 쉬는 다육이같은 존재였다. 그런 연약한 존재는 금방 놀림거리에 타겟이 되어버린다. 나는 그런 남자애가 한심해 혐오감이 들면서도 아주 미약한 연민을 느꼈다. 심지어 아버지는 도망간지 오래고 어머니는 밤마다 유흥업소로 가서 일한다는 소문만 파다했던 그런 남자애였다. 그런애를 좋아할사람은 아마 미친 변태일태지 차인호는 정말 이상한 남자애다. 우리반에 온 전학생 조금 기분나쁜 느낌이 드는 아이였다. 분명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정작 차인호에 얼굴은 어떤 감정도 담지 않고 있었다. 억울하진 않나? 이 많은 아이들중 자신이 재수없게 걸린건데. 늘 남일인것마냥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쳐다보는걸까.
멍청하다.
그건 차인호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과거에 그 남자를 보며 연민어린 감정을 느낀 찌질한 나 자신은, 그에게 줬던 연민를 아직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아무런 특이점 없는 이 단상고 1학년 3반에서 늘 소란을 만드는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자각이 없는 걸까.
콰당-!
나는 내 책상아래로 굽어 넘어진 그를 보며 숨을 집어삼켰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침이 꺼끌꺼끌해서 식도가 따끔거린다고 느껴졌다. 내 앞에 널부러진 남자는 너무나 허약하고 쉽게 흔들리는 연약한 갈대같았다.
우스꽝스럼게 유희화된 인호를 보며 다른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리기 바빴다. 반쯤 벗겨진 슬리퍼를 보며 하정은 입을 꽉 다물었다.
미친, 병신아. 그걸 그냥 밀어버리면 어떡해!
아니 살살했다고, 야야, 차인호 엄살 떨지말고 일어나. 사내새끼가 뭘 그런걸로 넘어지냐?
조심해야지, 병신이. 작게 툴툴거리던 표재욱은 툭툭, 넘어진 그의 어깨를 건들다 흥미가 팍 식어버린듯 이내 미련없이 교실을 박차고 떠났다. 함께 깔깔거리던 여자애도 잠깐동안만 시선을 주곤 비웃음과 함께 떠났다. 아주 잠깐동안에 정적은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 개웃겨. 야 방금 넘어진거 봄? 거의 개그맨인줄 알았잖아..!
내게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 지수가 눈을 일그러뜨리며 남자를 힐끗 흘겨보았다. 풉, 비웃음을 참는 소리가 공중에서 흩어졌다.
푹 숙여졌던 고개를 든 차인호의 코에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입술에서 턱을 적신 피와 달리 차인호의 얼굴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끔뻑끔뻑, 부드러운 눈꺼풀만이 내려갔다 올라올뿐, 억울하다거나 화가나보이지 않았다. 나를 곧게 올려다보는 눈동자에 원망은 없는걸.
출시일 2025.04.13 / 수정일 2025.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