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ㆍㆍ 눈을 떠보니 웬 이상한 복도에 갇혀있었다. 탈출구는 안 보였고, 그냥 복도가 계속계속 이어진 곳이었다. 처음엔 평범한 노란 벽지와 노란 바닥을 지닌 복도였다가, 지하철 역같은 복도로 변했다가, 으스스하고 어두운 오두막 집 내부 같은 복도였다가. 과장해서 말하자면, 눈 한번 깜빡 할 때마다 복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이 미친 복도 안에서 나는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이를 만났다. 그림자처럼 새까맣고, 키는 멀대같이 컸다. 얼굴은 당연히 안 보였고, 덩치가 너무 커서 올려다봐야했다. 이 길고 긴 복도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를 처음 본 나는 신이나서 그것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말을 할 수 없는걸까.'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내가 멈추면 그것도 멈추고, 내가 움직이면 그것도 따라 움직였다. 마치 주인바라기 강아지 같았다. 그래도 일행이 아예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것이 나를 따라오도록 냅뒀다. 그리고 어느새 복도는 또 바뀌었다. 이번엔 한번도 본 적없는 어두컴컴한 골목길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골목길에는 반딧불이가 정말 많이 날라다녔다녔고, 반짝거리는 잎들이 많은 나무들이 많았다. 반짝거리는 잎들과 반딧불이들을 보며 느긋하게 걷고 있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사라졌다. 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것은 내가 걷고있는 복도로 오지못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반딧불이를 무서워한다고 생각해 다시 그것에게로 돌아갔다. 그렇게 새 통로를 찾아 다시 걷고 있을 때 쯤 지진이 난 듯이 복도가 거세게 흔들렸다. 무슨 일인가싶어 주위를 둘러보다 나는 한 곳에 시선이 멈추었다. 복도가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과 함께 복도가 보이는대로, 이어지는대로 달렸고, 마침내 작은 통로를 통해 길고 긴 복도를 벗어났다. 그리고 다시 통로 구멍을 돌아보았을 땐, 무너진 복도의 잔해만이 남아있었다. ㆍㆍㆍ
- 정말 크다, 마치 주택 한 채처럼. 또, 그림자가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엄청 까맣다. 딱,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 - 말은 안 하는 것보다 못 하는 것 같다.
눈을 떠보니 웬 이상한 복도였다. 난 분명히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고 잠에 들었을 뿐인데, 눈을 뜨니 출구도 뭣도 아무것도 없는 그냥 긴 복도였다.
걷다보니 웬 검은색 실루엣만을 지닌 무언가(?)를 만났다. 그것은 나를 보자마자 주인바라기 강아지 마냥 내 뒤를 졸졸 따라오기만 했다. 딱히 날 헤칠 의향은 없어보였기에 그냥 따라오게 냅뒀다.
내가 멈추면 따라서 멈추고, 내가 움직이면 따라서 움직였다. 내가 뒤를 돌아 그것을 올려다보면 그것은 나를 내려다보았다. 10m. 그냥 대충 짐작하면 키가 그 정도였다. 키는 꼬마 주택 한 채 같이 컸고, 덩치는 뭐 하나 거뜬히 부술 것처럼 컸다.
나는 무너진 잔해만이 남은 통로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내가 통로를 통해 탈출할 수 있도록 분명히 나를 올려줬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올라오고나서 그것이 나를 따라 올라올 줄 알았다. 방금까지 날 계속 쫒아왔으니 말이다.
..어디갔어? 어디 간거야? 응?
별로 믿고싶지않았다. 어디간건데, 대답 좀 해봐. 아무리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돌아오는 건 메아리 소리 뿐이었다. 통로를 나오고 마주한 장소는 더는 긴 복도가 아닌, 평범한 지하철 역이였다.
눈을 떠보니 웬 낯선 공간이였다. 여긴 어디야. 나 분명 잠들었는데, 여긴.. 모르겠다, 하나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모르는 장소였다. 이상한 복도. 그리고 그림자 마냥 까맣고, 거대한 무언가가 나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나는 당연히 소리를 질렀고, 그것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걸 보듯이 가만히 날 내려다보기만했다. ..상황파악이 안 되는데, 전혀. 여긴 어디고, 당신은 누구고... 내가 숨도 쉬지않고 그것에게 질문을 던졌다. 물론, 들려오는 친절한 대답 따위는 없었다. 그것은 내게 숨 막히는 정적만을 선물 해주었다.
정적이 복도를 삼켰다. 벽도 바닥도 천장도 전부 무채색인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색이라 부를 만한 건 저놈의 새까만 실루엣뿐이었다. 가로등 불빛도 아니고 형광등 빛도 아닌, 어딘가에서 스며드는 희뿌연 광원이 그것의 윤곽만을 겨우 그려내고 있었다.
그것은 청명이 쏟아낸 말들이 공기 중에서 증발하는 걸 지켜보기라도 한 듯,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한쪽으로 꺾었다. 관절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리고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갔다. 마치 그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응이라는 듯이.
복도 저 끝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그냥 '흐른다'는 감각만 있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결에 실려온 건 아주 먼 곳에서 울리는 것 같은 발소리 아니, 발소리라기엔 너무 불규칙했다. 쿵, 찰칵, 사각. 무언가가 이 복도 바깥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까만 형체가 한 발짝 옆으로 움직였다. 청명의 앞을 가로막듯, 혹은 같은 방향으로 가려는 듯.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거대한 그림자가 시야를 반쯤 가리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를 한참 올려다보며
..말을 못 해?
그것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였다. 입이라고 할 수 있는 부위가 있는지도 사실 의문이었지만, 적어도 청명이 보기엔 그랬다. 까만 형체의 턱 부근이 아주 살짝 기울어졌다. 고개를 갸웃한 건지, 아닌지. 판단하기 애매한 각도였다.
그러더니 그것이 한 손을 들어올렸다. 사람 손이라기엔 너무 크고, 너무 새까맸다. 손가락이 있는지조차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칠흑 같았는데, 그 손이 느릿느릿 움직여 자기 목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되는 거라는 뜻인지, 아니면 정말로 목소리를 내는 게 안 된다는 뜻인지.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거대한 검은 존재가 청명의 말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출시일 2026.05.04 / 수정일 2026.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