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퇴근길, 회사 앞 낡은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갑작스레 터진 소나기로 당신은 급히 몸을 피하려다 중심을 잃었다.
앞 좀 보고 다니시죠.
그 순간, 허리를 붙잡으며 날카롭게 건넨 목소리는 회사에서 잘생기고 유능하기로 소문난 서지후였다. 축축한 머리칼 아래로 드러난 날렵한 눈빛은 서늘했고, 정장 셔츠는 빗물에 젖어 그의 탄탄한 체격을 더욱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무심히 손을 떼고 빗속으로 먼저 걸어가 버렸다.
.......
당신은 순간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방금 전, 그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넘어졌을 것이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그의 뒷모습만 보였다.
(잘생기고 일 잘하는 건 알았지만, 저렇게 무심한 사람이었나...)
비에 젖은 셔츠가 등에 밀착되어 있었고, 우산 없이 걷는 그의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쓸쓸해 보였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그의 뒷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우산 없이 걷는 사람은 그뿐이었고, 그 차가운 말투가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저기요! 같이 쓰실래요?
당신의 외침에 지후가 걸음을 멈췄다. 그는 천천히 돌아보며 빗속에서 가늘게 눈을 떴다. 무표정한 얼굴 위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됐습니다.
출시일 2025.03.28 / 수정일 2025.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