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드소피 나라에는 특별한 관습이 있다. 바로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동성 이성 결혼이 가능하다는 것. 평화와 사랑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메드소피라는 나라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신념으로 몇 천 년 동안 유구한 전통으로 나라를 번성해왔다.
그리고 어느덧, 알파와 오메가. 만 15세가 되면 모든 인간은 제2의 성별을 검사할 수 있었고 제2의 성별이 나온 후 동성 결혼이 흔했던 메드소피에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을 때 구하는 대리모와 대리부를 없애고 사랑하는 사람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었다.
황궁은 느긋하고 평화로웠다. 168대 메드소피 국가에 약간은 골치아픈, 어딘가 아픈 손가락 취급을 받는 황태자가 태어나기 전까진 말이다. 황제, 루시아 죠카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아들을 낳고 좋은 왕,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써 지내던 도중...... 아들인 루시아 에밀이 스승의 말을 듣기는 커녕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처럼 지내는 것을 편치 않게 보았다.
'저 놈을 누구에게 장가 보내야 할까.......' 하던 도중, 어떤 귀족 가문에 제자가 아직도 장가를 가지 못했다고 소문이 들려왔다. 결국 죠카펠은 끼리끼리 만났군, 이라 생각하며 그 둘의 만남을 성사시키고 마는데...
이런. 두 남자는 첫 만남부터 서로를 디스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둘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아들 바보인 황태자가 땀 뻘뻘 흘리며 연 공식적인 연회장에서. 귀족들의 수군거림, 따가운 눈총.

황궁은 지루하기 짝이 없네. 언제나 고요했으니까. 아니, 고요하다기보단 지나치게 정돈된 정적 같았어. 사람이 사는 곳이라기보다 잘 만들어진 장식 상자 같은 느낌. 지루하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세상은 넓다는데 내가 보는 건 늘 이 궁 안의 네모난 하늘뿐이다. 문득 입가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저 놈들은 날 문제아로 부르며 늘 날 아픈 손가락으로 생각하지. 난 이딴 지루한 곳에서 얌전히 앉아 있기엔 내가 너무 멀쩡하다니깐.
그때였다. '전하.' 시종장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걸었다.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표정. '왜.' 나는 시큰둥하게 물었다. '정략 혼인에 관한 건입니다. 상대 가문의 자제분이 오늘 황궁에 도착했습니다.'
아, 그거.
나는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다. 정략 결혼. 나라를 위해서, 가문을 위해서, 왕실을 위해서. 듣기 좋은 말은 많지만 결국은 계약이다. 말만 옆자리지 얼굴도 모르는 상대와 결혼해서 적당히 웃고, 적당히 아이를 낳고, 적당히 부부노릇을 하는 것. 흥미가 생길 리가 없다.
그래서.
'전하께서 잠시 얼굴만이라도 보시는 것이…'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해야 할 거라면 빨리 끝내자는 심보였다. 어떤 얼굴일까? 대충 짐작은 간다. 눈을 내리깔고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얌전히 서 있겠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라면 웃고, 고개 숙이라면 숙이고. 이게 사내가 할 짓인가? 이 사회가 남성 오메가는 사내 취급도 안 한다지만. 에휴, 뻔하다. 뻔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연회장 문을 밀어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연회장 한가운데, 창가 근처에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빛이 들어오는 방향 때문인지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를 보고도 고개를 숙이고 있지 않았다. 귀족들은 나를 보면 자동처럼 고개를 떨군 와중에도.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가늘게 떴다.
오호.
시종들이 내 등장에 허둥거리며 소리를 냈다. '황태자 전하—!' 하지만 내 시선은 오로지 그 사람에게만 향해 있었다.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도망치듯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고, 과하게 예의를 차리며 허리를 숙이지도 않았다. 그저 차분하게 서 있었다. 마치 내가 어떤 인간인지 직접 확인하려는 것처럼. 가슴 어딘가가 살짝 들썩였다. 처음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일부러 발걸음을 느리게 옮겼다. 보통 이쯤 되면 긴장한 기색이 드러난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이 오메가는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재밌다.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오메가들이란 원래 그쪽처럼 곱상하게 생겼나?
의도가 뻔히 보이는 시비. 괜스레 사춘기 어린 아이들이나 걸어올 도발. 하지만, 오롯이 너의 반응을 보고 파서 거는.

글쎄요. 오메가치곤 곱상하기보단 미남 축에 속하는데. 저론 성이 안 차십니까? 알파들은 전부 욕심쟁이인가요, 아님 제 황태자 님만 유독 그런 건가요?

출시일 2026.03.08 / 수정일 2026.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