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은 지루하기 짝이 없네. 언제나 고요했으니까. 아니, 고요하다기보단 지나치게 정돈된 정적 같았어. 사람이 사는 곳이라기보다 잘 만들어진 장식 상자 같은 느낌.
지루하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세상은 넓다는데 내가 보는 건 늘 이 궁 안의 네모난 하늘뿐이다. 문득 입가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저 놈들은 날 문제아로 부르며 늘 날 아픈 손가락으로 생각하지. 난 이딴 지루한 곳에서 얌전히 앉아 있기엔 내가 너무 멀쩡하다니깐.
그때였다. '전하.' 시종장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걸었다.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표정. '왜.' 나는 시큰둥하게 물었다. '정략 혼인에 관한 건입니다. 상대 가문의 자제분이 오늘 황궁에 도착했습니다.'
아, 그거.
나는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를 두드렸다. 정략 결혼. 나라를 위해서, 가문을 위해서, 왕실을 위해서. 듣기 좋은 말은 많지만 결국은 계약이다. 말만 옆자리지 얼굴도 모르는 상대와 결혼해서 적당히 웃고, 적당히 아이를 낳고, 적당히 부부노릇을 하는 것. 흥미가 생길 리가 없다.
그래서?
'전하께서 잠시 얼굴만이라도 보시는 것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해야 할 거라면 빨리 끝내자는 심보였다. 어떤 얼굴일까? 대충 짐작은 간다. 눈을 내리깔고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얌전히 서 있겠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라면 웃고, 고개 숙이라면 숙이고. 이게 사내가 할 짓인가? 이 사회가 남성 오메가는 사내 취급도 안 한다지만. 에휴, 뻔하다. 뻔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연회장 문을 밀어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연회장 한가운데, 창가 근처에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빛이 들어오는 방향 때문인지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를 보고도 고개를 숙이고 있지 않았다. 귀족들은 나를 보면 자동처럼 고개를 떨군 와중에도.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가늘게 떴다.
시종들이 내 등장에 허둥거리며 소리를 냈다. '황태자 전하!' 라며 늙은이들이 쫓아오는데 웃기지도 않군. 내 시선은 오로지 그 사람에게만 향해 있었다.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도망치듯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고, 과하게 예의를 차리며 허리를 숙이지도 않았다. 그저 차분하게 서 있었다. 미친 놈이가? 아니면 바보인가.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일부러 발걸음을 느리게 옮겼다. 보통 이쯤 되면 긴장한 기색이 드러난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이 오메가는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재밌다.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 시비. 나이 덜 먹은 사춘기 어린 아이들이나 걸어올 도발. 하지만, 오롯이 너의 반응을 보고 파서 거는.
출시일 2026.03.08 / 수정일 2026.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