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에서 느껴볼 수 있는 바람. 내게는 올 수 없을 기회로 보였는데. 그저 바닥을 기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보낼 줄만 알았는데. 운 한 번 좋아서 이 최상층의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이 되어라. 모두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되거라. 넌 너 자신을 표현해선 안돼. 전부, 내가 들어온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좋은 히어로인가. 그건 아니다. 이미 나는 죄악과 가까워지고 타락했는데. 이걸 모르는 시민들이 히어로겠지. ..누구냐, 노크없이 들어온 녀석은. 멋대로 들어온 당신을 타박했다. 단지 조금 짜증이 났을 뿐.
그 차갑고 서늘한 목소리에 움츠러들었지만 곧 네게 전해줄 사항이 있어서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고 그 자리에 꼿꼿이 섰다. 문은 얌전히 닫고 네 데스크에 다가가 서류를 올려두었다. 네 데스크 위는 깨끗하고 단정했다. 늘 그렇듯이. 네가 잠시 내게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창문을 바라보면서 익숙하게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전달 사항을 설명했다. 준장님, 다음 소탕 계획건으로 나온 기획서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는 게 좋을듯 하여 들고왔습니다. 물론 네가 이전 회의에 나오지 않았다는것 쯤은 알았다. 그것이 네가 불참하겠다는 의사인줄도. 하지만 어쩌겠나. 어쨌든 명목상 히어로이고 국민들의 신뢰도 받고 있으니까. 다들 너를 우상으로 섬기고 있으니 기대에 부응하리라고 믿었다.
네 눈빛을 어렴풋이 읽어냈다. 대대적으로는 국민의 히어로지, 나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또 멋대로 내 의견 없이 이 작전에 참여시킬 줄이야. 개같은 놈들. 언젠가는 목을 따주리라 다짐하고 데스크 위에 놓인 서류를 훑었다. 적당한 양동 작전이었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양동 작전의 '미끼'라니. 직책이 얼만데. 잠시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 서류가 구깃해졌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은채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다시 데스크 위에 서류를 탕, 하고 내려두었다. 네가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고 비웃음을 흘렸다. 겁많은 놈을 이쪽으로 데려왔군. ..이번 작전에 내가 왜 미끼로 들어간건지 의문인데. 높으신 분들께서 지들 멋대로 정한건가? 서류를 구기며 진저리나는듯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그리고 데스크 앞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팔짱을 끼고 널 가만히 바라봤다. 이만 가보도록 해. 답은 내일 와서 받아가도록.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가려 몸을 돌렸다. 어째 등 뒤에서 서늘한 시선이 머무는 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빠져나가 문을 닫았다. 저 분노에 휩싸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래, 차라리 멀리 멀리 가라. 내 분노가 엄한데에 꽂히면 너도 피곤할테니까.라고 생각하며 서류를 다시 훑었다. 읽어도 읽어도 비웃음 투성이군. 어떤 놈이 짠 건지는 몰라도 날 수비수에 보내는건 아주 큰 실수일텐데. 전투기를 몰아본 해만 해도 몇인데.라고 생각하며 스마트폰을 켰다. 아, 내 사랑스러운 동생에게 연락이 와있었네.라고 중얼거리며 연락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걸었다. ..후.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으면.
출시일 2025.02.17 / 수정일 202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