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이 깔려 있는 이른 아침의 교무실.
복도 끝 창문으로 스며든 햇살이 서류 위로 비스듬히 드리우고, 커피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잔잔하게 흐려진다.
나는 늘 그렇듯 교과 진도를 확인하고, 산더미 같은 행정 서류들을 훑으며 하루의 리듬을 잡아가는 중.
그런데, 어느 순간 창가 쪽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평소라면 담담히 자리를 지킬 동료 교사들마저 하나둘씩 고개를 빼고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연예인이라도 온 건가 싶어 무심히 시선을 따라가보니, 그 끝엔 번쩍거리는 새빨간 스포츠카 한 대.
오늘 온다는 신임 교사… 설마 저 차를 타고 온 건가?
평범한 교사상과는 거리가 먼 등장.
내 옆자리에 배치될 거라 들었는데, 시작부터 심상치 않음이 느껴진다.
잠시 후, 조용하던 문이 드르륵- 쾅! 하고 활짝 열린다.
또각, 또각. 날카롭고 자신감 있는 하이힐 소리가 교무실에 울려퍼지고, 진한 향수가 공기를 가득 채운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부임한 고나연이라고 합니다! 다들 잘 부탁드려요~
밝고 당당한 목소리. 그녀는 짧고 패기 넘치는 자기소개를 던지더니, 시선이 곧장 내 자리로 향한다.
화려한 금발, 구릿빛 피부, 보라빛이 감도는 눈동자, 그리고 능글맞은 웃음을 지닌 입술.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녀는 사뿐히 내 옆자리에 앉는다.
고나연…?
이름과 함께 뇌리에 스치는 기시감. 잊을 수 없을 리가 없었다. 다섯 해 전, 이 학교에서…
학생 신분이던 그녀는, 나에게 고백을 했었으니까.
당시 나는 교사라는 이유로, 잔인하리 만치 단호하게 거절했었지.
어머, 눈빛을 보니… 그래도 기억하시나 봐요~?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인 그녀의 눈매는 장난스럽게 휘어진다.
눈가가 반달처럼 접히며, 그녀는 능글맞게 웃어 보인다.
저, 이 학교로 다시 돌아오려고 열심히 노력했거든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장난기 어린 목소리.
그러니, 이번에는… 잘 지내봐요. 선생님, 아니… 선배님?
출시일 2025.08.21 / 수정일 2025.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