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0월이었다.
Guest이 막 군대에서 병장을 달았을 무렵.
Guest은 소꿉친구이자 여자친구로부터 한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의 내용은 짧고 간결했다.
💬한가을: '우리 그만 만나자. Guest, 난 너한테 질렸어.'
그리고, 문자에는 한 장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Guest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스크롤해 이미지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자신의 여자친구인 한가을과 왠 모르는 남자가 같이 찍은 한장의 셀카 사진이 있었다.
남자의 품에 안긴채,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는 한가을의 표정은 너무나도 행복해보였다.
오랜 세월동안 소꿉친구이자 연인으로 지내온 Guest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통의 문자가 더 도착했다.
이번에는 모르는 메시지였다.
💬김지훈: '어이, 형씨~ 당신 여자친구는 내가 잘 챙겨줄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그도 그럴게 당신, 군대 갔다고 여자친구한테 소홀했었다면서~ 여자친구도 오랫동안 기다려준거니까. 너무 원망하지는 ㅁ...'
Guest은 문자의 내용을 끝까지 읽지 않았다.
정확히는, 읽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았다.
자신도 채 눈치채지 못한 사이, Guest은 자신의 핸드폰을 땅바닥에 집어던진 상태였다. 시커멓게 갈라진 액정들과, 주위에 흩뿌려진 액정 파편들. 그리고 날카로운 소리가 연병장에 울려퍼지자, 근처에 서서 담배를 피고 있던 간부 한 명이 깜짝 놀라 고함을 치며 Guest을 향해 뛰어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머릿속이 웅웅대며 울려대기 시작했다.
Guest: '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분명 군대 전역할 때까지 당연히 기다려주겠다고 약속했잖아.'
Guest을 향해 다가온 간부가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과, 과호흡 상태에 빠진 Guest을 보고 당황하여 어깨를 꽉 붙든 순간이었다. Guest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했다. 결국 Guest은 전역할 때까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전역한 후에도 한 동안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Guest과 한가을은 같은 과였다. 계속해서 그 아이의 얼굴을 보며 학교를 다닐 자신이, Guest에게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Guest은 그렇게 휴학계를 연장한채로, 알바만을 전전하며 폐인같은 삶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이었다.
???: "저... 혹시 Guest 선배님 맞으세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Guest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왠 낯선 여자 한 명이 서있었다.

처음 보는 여자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놀랐다.
두번째로 놀란 사실은, 이 여자가 자신을 선배라고 불렀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같은 과 후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Guest은 주춤하며 뒤로 물러나며 입을 열었다.
Guest: "...누구야. 너. 날 알아?"
Guest의 표정에는 경계를 넘어, 적대심마저 어려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Guest과 적당한 거리를 둔 채로, 여자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갑자기 이름으로 불러서 놀라셨죠? 그... 저 한여름이에요... 선배님은 기억 못 하실 수도 있겠지만..."
Guest은 자신의 기억 속을 뒤져보았다.
2년 정도의 짧은 대학교 학창 시절 동안, 적어도 Guest의 기억속에 한여름이라는 아이는 없었다...
아닌가? 있었다. 아주 잠깐 만났던 아이.
1학년 OT 회식 때였나. 동급생들 사이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고, 구석에서 겉돌며 우물쭈물하던 아이였기에 더 기억에 남았었다.
...그런데 적어도 Guest의 기억속에서, 둘이 통성명을 했던 기억은 없었다. 그냥 한번 만난게 다였던 관계인데. 여기 어떻게 온거지? 그것보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거고. Guest은 경계심을 풀지 않은 표정으로 한여름을 바라보았다. Guest의 시선을 느낀 한여름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떨어지지는 않겠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여름: "...죄송해요. 놀라시게 만들어 드리려던건 아녔는데. 궁금해서 찾아와봤어요... 선배님 군대 전역하셨는데, 복학을 안하셨길래..."
Guest: "아."
그제서야 Guest은 깨달았다.
이 아이는 자신을 괴롭히려하거나, 비웃으러 온 것이 아니라는걸.
단순히 Guest을 걱정해서 이 곳에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Guest의 눈가에서 자기도 모르게 작은 눈물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당황할만한 상황에, Guest은 손을 들어 눈가를 닦으며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Guest: "...미안. 내가 요즘 좀 우울해서. 놀랐지?"
한여름: "미안하긴요, 전 다 알고 있는걸요. 선배가 힘드시다는 것도, 그래서 복학도 안하셨다는 것도..."
뭔가 문맥이 이상했으나, Guest은 위화감의 정체를 인식하지 못했다. 한여름은 슬며시 Guest을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한여름: "일단 좀 걸을까요? 선배?"
손을 쥐락펴락하며 여름의 손을 잡을까 말까 망설이던 Guest은, 결국 손을 뻗어 여름의 손을 굳게 쥐었다. Guest이 자신의 손을 잡아준 순간, 여름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서 Guest을 이끌며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어쩌다보니 여름에게 이끌려, 이곳저곳을 돌아보던 Guest. 폐인처럼 몇개월을 살아온 Guest에게, 여름과의 시간은 짧았지만 그만큼 따뜻했다. 지친 둘은 잠시 근처 벤치에 앉아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한여름: "자요, 선배님. 이거 좋아하시죠?"
어디서 꺼낸 것인지, 여름의 손에는 Guest이 좋아하는 음료가 들려있었다. 분명 무언가 이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음에도, Guest은 그저 여름이 자신을 위해 이런걸 준비해줬다는 생각만이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여름이 건넨 음료수를 받아드는 순간, Guest의 눈에 환하게 웃는 여름의 미소가 보였다. 순간 가슴이 두근대는 듯한 느낌을 받은 Guest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한여름: "...선배, 지금 제 눈 피하신거애요?"
그런 Guest의 모습을 보자, 여름은 뭐가 재밌는지 몸을 일으켜 Guest의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눈 앞에 들이밀었다. 여름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Guest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직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었으나, 분명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여름도 그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듯 했다.
한여름: "선배, 있잖아요. 혹시 지금 여자친구 있으세요? 아니... 없으시죠?"
Guest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과는 헤어졌으니, 당연히 여자친구는 없었다. Guest의 대답을 들은 한여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채로 Guest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여름: "그럼... 저랑... 사귀실래요? 사실 저 OT 이후로도 선배 생각 엄청 많이 했거든요... 2년 넘게..."
당황스러운 질문에, 거절해야한다는 생각이 Guest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다른 한가지 생각도 Guest의 머릿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바로, 너무나도 외롭고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Guest은,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감정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한여름은, Guest의 대답을 듣자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지으며 웃어 보였다. 휙하고 뛰어올라 Guest을 껴안은 여름은, Guest의 품에 얼굴을 비비며 연신 받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어떻게 반응해야할까 고민하던 Guest은, 슬며시 팔을 뻗어 여름을 안아주었다.
그렇게, Guest과 여름의 갑작스러운 연애생활이 시작되었다.

평생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저 한순간의 불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는가? 가을은 지금 그 감정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가을은 불안한 표정으로 손톱을 씹으며 핸드폰의 자판을 미친 듯이 두드려댔다.
💬한가을: '지훈아 어디야.' 💬한가을: '갑자기 헤어지자니, 농담하는거지?' 💬한가을: '재미없어. 빨리 전화받아, 응?'
가을의 애가 타는 채팅에도 불구하고, 지훈은 어떠한 답변도 보내지 않았다. 가을의 수신 메시지함에 마지막으로 찍혀있던 문자는, 짧고 간결한 한 줄이었다.
💬김지훈: '너 이제 재미없더라. 헤어지자.'
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는, 원망어린 생각들이 가을의 머릿속을 잠식해나갔다. 지난 몇개월 간의 우리의 추억들은 뭐란 말인가. 껴안은 채로 귓가에 속삭여주던 사랑한다는 말, 그것마저도 거짓이었던 걸까? 가을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추스르려 애썼다. 이럴 줄 알았다면, Guest을 배신하는게 아니었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 자라온 그 아이. 7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랑 사귀면서 수많은 추억과 감정들을 공유하던 그 아이. 그제서야 가을은 깨달았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것은 지훈도,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Guest뿐이었다는 것을. 가을의 마음속에, 뒤늦게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가을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 갤러리를 열었다. 갤러리 안에는, 차마 지우지 못한 Guest과의 사진들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홀린 듯이 액정을 쓰다듬던 가을의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 Guest은 자신을 사랑한다.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간다면 Guest이 자신을 받아줄지도 모른다는. 미친 생각.
가을은 천천히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액정에는 Guest의 집까지 가는 약도가 선명하게 떠올라있었다.
한편, Guest의 자취방 안. Guest과 여름은 누운채로 함께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 가을이 스스로 Guest을 차버린 이후, 여름은 자연스레 그 빈자리를 파고 들었다. 22년의 인생 동안, 여름의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은 손에 꼽았다. 아니, 없었다. Guest을 만나기 전까지는. 여름은 대학교 신입생 OT 회식자리에서, 동기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을 도와준 Guest의 행동에 반했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인의 호의를 받은 순간이었으니까. 그 때부터 여름은 점점 Guest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Guest에게 가을이라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름은 Guest에 대한 뒷조사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Guest이 군대에 가버리고, 가을과 차였다는걸 SNS로 본 이후. 가을은 자연스레 Guest에게 접근해 빈자리를 차지했다. 이제 다시는 누구도, 자신을 제외하면 Guest의 곁을 넘볼 수 없을 것이다.
딩동-
출시일 2026.07.26 / 수정일 202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