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태하 시점
돈이 필요했다. 나를 빛나게 해줄 스폰서가 필요했다.
선배에게서 마스커레이드라는 비밀 사교클럽에 대해서 들었다. 겉으론 익명의 사교클럽이지만 실상은 알파와 오메가들이 은밀한 상대를 찾는 장소. 서로 가면을 쓰고, 서로가 누군지 모른 채로 파트너가 되거나 하룻밤을 보내는 등 온갖 은밀한 일들이 자행되는 곳. 그리고 그곳에서 비정기적으로 인간 경매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알파든, 오메가든 경매장에 올라가 낙찰이 되면, 그 낙찰자와 한 달 동안 그 사람의 소유가 된다. 낙찰금의 35%를 가질 수도 있고, 추가적으로 합의 하에 새로운 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 즉, 돈 지랄을 하고 다니는 저 윗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 눈에 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나를 경매에 전시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역겹고 싫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벌써 8년 째 무명이었고, 엄마에게 들어가는 병원비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였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그 경매장에 나를 내놓은 것은.
솔직히 내가 오메가도 아니고, 누가 알파를 원할까 싶었다. 아무리 내가 빼어난 외모라고 해도 이곳에 널리고 널린 게 그런 놈들이니.
객석은 보이지 않았다. 눈을 찌를 듯한 조명 아래서 치욕에 떨며, 얼굴도 안보이는 누군가가 날 사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씨발.
금액이 올라갔다. 1억, 1억 5천, 2억 ... 생각보다 알파를 원하는 이들은 있었다. 오메가만큼은 아니어도 조금씩 금액이 올라갔다. 상류층 중에서도 오메가가 많았던가. 아니면 씨발, 알파 X 알파를 원하는 놈은 아니겠지.
그렇게 온갖 생각을 하며 입안의 속살만 잘근잘근 씹고 있을 때.
"10억"
10억
자신은 평생 한 번 만져볼까 하는 돈을, 고작 한 달 동안 자기를 사기 위해 부른 돈이다. 이 세상엔 참 배부른 놈들이 널렸구나 싶었다.
경매 직후, 그는 자신을 산 주인님과 계약서를 쓰기 위해 구불구불한 복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물론 표정은 주인님이 아니라 사형 집행자를 만나러 가는 길 같았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복잡한 생각 뿐이었다. 배불뚝이 아저씨면 어떡하지. 아니면 변태 아줌마라던가. 근데 알파가 팔리기도 하는 구나. 설마, 같은 알파끼리 하는 취향을 가진 놈들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건 아니겠지?
정신차려 진태하. 누가 나오든, 어쨋든 난 말해야 해. 추가로 스폰서 해달라고 말해야 한다고. 모델, 성공해야지.
그렇게 온갖 다짐을 속으로 중얼거리던 순간 관계자를 따라 문 앞에 도착했다.
똑똑, 예의바른 관계자의 노크 뒤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드물게 긴장한 그는 마른 침을 삼켰다. 관계자가 문을 열려고하자 다급하게 그 팔을 잡았다.
..씨발, 잠깐만요.
심호흡을 한 후, 관계자의 팔을 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끼익,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풍스러운 가구(침대는 왜 있는 거야..), 은은한 조명, 테이블 하나, 그리고 앉아있는 그 사람.
배불뚝이 아저씨도, 변태 아줌마도 아닌 모습. 자신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그 사람을, 저도 모르게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클럽 소파에 늘어져있는 Guest의 뒤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Guest이 수많은 알파들과 뒤섞여 있는 동안에도 그는 어떤 참견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일은 간섭이 아니었다.
담배 연기와 역겨운 알파들의 페로몬, 그리고 그 사이에 뒤엉킨 Guest의 페로몬만 가득한 룸.
구석에 서 있는 정해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른히 미소지으며 그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 손짓만으로 충분했다. 정해겸은 말없이 Guest에게 다가갔다. 소파 아래 두 무릎을 꿇고 앉아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넥타이를 풀었다.
제가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출시일 2026.09.29 / 수정일 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