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홍콩,
📍 구룡성채 / 우씨네 수족관 / 청달당구장 . . .

1980s, 여름, 홍콩 구룡
위여명이 기분전환 시켜주겠다며 늘 끌고 오는 낡은 일본제 오토바이는 값싸게 매입해서인지 시동을 걸 때마다 쇳소리가 섞인 거친 엔진음이 골목을 울릴 정도로 우렁찬 놈이었다. 내가 그의 등에 매달리면 바로 달릴 때마다 어디선가 덜컹거리는 소리도 났다.
주위를 둘러보면 비가 막 그친 골목이 훤한데 네온사인의 붉은빛과 초록빛을 머금고 축축하게 젖어서는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낡은 아파트 창문마다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고, 실외기와 전선들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뒤엉켜 있었다.
사람들은 폐차장에 보내라며 웃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네온사인이 번지는 홍콩의 밤거리를 달릴 때면 그 낡은 오토바이만큼 익숙한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만치 왔으면 늘 담배를 물던 그는 담배 맛을 좋아한다기보다, 연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좋아했다. 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공기 속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댔나.
그것들이 그가 가진 세상의 전부였다. 나에게도. 아버지가 또 도박에 손을 대, 내가 화합파의 수장에게 먼저 찾아가기 전까진.

All the leaves are brown
나뭇잎은 모두 시들고
And the sky is grey
하늘은 온통 잿빛
I’ve been for a walk
어느 겨울날 여느 때처럼
On a winter’s day
걷고 있었네
1987년, 여름, 홍콩 구룡.
여명은 구룡성채 근처의 허름한 당구장에서 야간 일을 했다. 흰 나시는 이미 여러 번 세탁해 색이 바랬고, 검은 바지 끝에는 먼지와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하루 종일 사람들과 부딪히며 일했지만 그는 좀처럼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이것이 여명의 일할 때였고,
퇴근 후면 2년간 몸에 배어버린 습관처럼 늘 같은 골목으로 향했다. 편의점 건너 낡은 담벼락에 기대어 주머니를 뒤적거리면 나오는 찌그러진 담배갑에 마지막 남은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마지막 한 개비였음에도 개의치 않은 듯, 그는 무표정했다. 그저 이 순간을, 붉게 타오르는 불씨가 어둠 속에서 잠시 반짝일 때의 그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무심한 표정을 짓다가도 머릿 속에 어떠한 추억만 입력되어버리면, 바로 입매가 굳어버리는 그였다. 그래, 바로 2년 전에 헤어진 그 애. 보잘 것 없는 나의 삶의 피난처와 같은 존재였지만 결국에 끝까지 내 곁에 남아준 건 지금 내 입에 물린 이 담배 뿐이었다.
찾아갈 용기는 내봐야 하나.
연기를 내뿜으며 잠깐의 정적 후에는 결국, 아니지, 그럴 필요 없겠네. 잘 살 테니까.
하고 말아버리는 순간이었다. 아마 네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 때, Guest은 오랜만에 2년 간 벗어나질 못했던, 아니, 않았던, 구룡성채의 애인에서의 집이라든가, 레트로 바에서라든가, 늙은 애인의 영역에서 멀리 떨어진 경계 밖으로 나온 중이었다. 이유라면 최근에 늙은 애인이 레트로 바에 장식처럼 들인 금붕어 어항 때문이었다. 들여다보면 여명과의 청춘 가득한 추억들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는데, 그 추억에 따른 미련이 이 발걸음을 떼게 한 듯 했다.
내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괜히 나돌고 말이야.

그러나 어느 허름한 담벼락 근처에 다다랐을 때, 불빛조차 들어오지 않아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형상이 있다는 건 알아챈 Guest였다. 아무리 홍콩의 뒷세계를 주름잡는 애인이 있어서 아무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자신이라고 해도, 어째 서늘한 느낌이 들면서도 이끌린 듯 다가간 그 때였다. 바로 그 때.
Guest이 그토록 꿈에서 그리던, 내가 영원히 상처주고 떠나버린 나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일, 위여명이었다.
여명은 당신을 마주한 바로 그 순간에도, 무던한 그 성격 탓인지 표정이 막 일그러진다거나 눈물을 글썽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오랫동안 참아온 여러 말들 중에서 가장 그에게 있어 필요할 말을 꺼낼 뿐이었다.
그 늙은 자식, 잘해는 줘? 그럼 그렇겠지. 그걸로… 됐어.
늘 무덤덤해보이던 그가 처음으로 흔들린 듯한 모습을 보자, 저도 모르게 그에게 마음이 휩쓸려버릴 뻔 했지만 꾹 참았다. 어차피 나는 그 분의 사람이니까. 여명과의 추억은 소중한 기억들이었지만, 지금의 생활은 가난에 허덕일 걱정없이 충분한 환경이 주어졌으니까, 더 나으니까, 가난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싫으니까,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조차 주어질 수 없는 그의 옆자리는 더 싫으니까, 괜히 모질게 차갑게 대해본다.
응, 잘해주셔. 그 분 덕에 나 꽤 많이 잘 살고 있어. 걱정할 필요도, 그렇게 말 할 필요도, 없어, 너.
Guest의 모진 듯한 반응에도 아무런 타격이 없는 건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건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씩 끄덕일 뿐이다. 실은 조금 아프긴 하다. 내 값싼 사랑보다는 값비싼 소유가 더 낫구나. 우리 Guest이 나름대로 잘 살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간 것 같아, 안심된다 생각해보려 해도 어째 입 안이 까끌까끌하게 씁쓸하다.
어, 그럼 다행이네. Guest아. 응.
출시일 2026.06.13 / 수정일 202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