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해골을 머리에 쓰고 구르는 재주를 하면 그 유골 주인으로 둔갑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능력을 타고난 것을 행운이라 여겼다. 한낱 미물 주제에, 인간여자를 마음에 품을 수 있었으니. 부모를 잃고 떠도는 새끼여우에 불과했던 나에게, 그 여리고 고운 손을 내밀어준 인간은 너뿐이었다. 어린 짐승을 불쌍히 여기기라도 했는지, 너는 나에게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그 순수한 마음이 어찌나 고맙던지. 허나 여우의 형체로는 내 마음을 전할 수 없었다. 성체가 되자마자 너의 마음에 들 만한 외형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지 않은 산이 없다. 인간으로 둔갑을 하는 순간, 여생을 그 모습으로만 지내야 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겁이 많은 아이이니 듬직한 반려자를 원하지 않을까. 인간이 된 나의 모습을 좋아할 너를 상상할 때면, 힘든 여정에서도 웃음이 끊기질 않았다. 풍채가 좋고 용모가 준수한 인간의 유골을 발견했을 때는 어찌나 행복하던지. 나는 그 유골을 쓴 채로 단숨에 재주를 굴렀다. 드디어 너와 같은 모습을 갖춘 것에 감격하며 다시 너의 앞에 나타났다. "오라버니..?" 아, 나를 보는 생경한 너의 눈빛에 잠시 멈칫했던가. 이내 눈물을 흘리며 달려와 안기는 너를 받아줄 때, 이상함을 느꼈어야 했는데. 나는 몰랐다. 내가 쓴 인두겁이 몇 년 전 짐승에게 물려죽은 그녀의 오라비 것일 줄은. 죽은 줄만 알았던 오라버니가 살아 돌아온 줄 알고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너에게, 차마 내가 둔갑한 여우라는 사실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너가 이리 나를 바라보며 좋아하는데, 이렇게라도 너의 곁에 있으면 언젠가는 너도 나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을까. 나도 모르겠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내가 너의 오라비 것이 아닌 해골을 썼더라면 달랐을까. 그게 아니라면, 짐승이 주제도 모르고 너를 귀애하게 된 것이 나의 죄악이더냐. 이 길의 끝에 너가 허무함에 사무쳐 절망할 것임이 분명한데도, 나는 어리석게 행복한 결말을 바라고 있다. 그래, 내가 기어이 나의 무덤을 팠구나.
네 오라비의 인두겁을 쓴 채로 되지도 않는 가족 행세를 한 지도 보름이 지났다. 언젠가는 알려줘야 할 터인데, 나는 너의 오라버니가 아니라고. 그저 인간의 탈을 쓴 여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네가 나를 미워하게 될까 두려워, 이토록 이기적이구나. 미안하다, 나는 너에게 허망한 희망을 불어넣어서라도, 네 곁에 머물고 싶다.
...오라버니 왔다, 이리 온.
해사하게 웃으며 나에게 안기는 너를 볼 때마다 내 안의 어딘가가 비틀리는 기분이 든다. 한낱 미물 주제에, 감히 품어서는 안 될 감정을 품었나.
네 오라비의 인두겁을 쓴 채로 되지도 않는 가족 행세를 한 지도 보름이 지났다. 언젠가는 알려줘야 할 터인데, 나는 너의 오라버니가 아니라고. 그저 인간의 탈을 쓴 여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네가 나를 미워하게 될까 두려워, 이토록 이기적이구나. 미안하다, 나는 너에게 허망한 희망을 불어넣어서라도, 네 곁에 머물고 싶다.
...오라버니 왔다, 이리 온.
해사하게 웃으며 나에게 안기는 너를 볼 때마다 내 안의 어딘가가 비틀리는 기분이 든다. 한낱 미물 주제에, 감히 품어서는 안 될 감정을 품었나.
잠시라도 힘을 풀면 너가 이대로 사라질 것만 같아 맞잡은 손에 힘을 준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너를 닮은 매화의 향기가 나에게 깊이 스며든다. 이대로만 지낼 수 있다면. 너가 이리 애틋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 주는데, 이깟 오라비 행세를 하며 곁에 있는 것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너만이 나를 아껴준다면.
오늘따라 세게 안는 품에서 살짝 뒤척인다. 오라버니이... 나 숨 막혀. 오라버니가 집으로 돌아온 후, 이렇게 끌어안아주는 순간이 늘었다. 아마 고비를 넘기고 나니 힘이 들어 그런 것이겠지.
그냥 좀 안겨있거라. 동생 품이 따뜻해서 그런 것이야.
나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너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마음이 저릿하다. 너가 나를 좋아해주는 것도 내가 오라비의 모습을 하고 있어 그런 거겠지. 진실을 알고나면, 너는 나에게 배신감을 느낄까. 혹시나 너가 나를 떠나려 한다해도, 난 널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나의 거짓말에 절망할 것이라면, 차라리 내 품 안에서 바스라지길.
이상해, 오라버니가 꿈에 나왔어....짐승에게 물린 큰 상처를 입은 채로..... 아직도 그 끔찍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꿈 속의 오라버니는 간신히 입을 벌리고 속삭였다. '그건 내가 아니야.' 라고. 순간 등골이 섬찟하며 기이한 서늘함이 몸을 지배한다.
그럴 리가 없잖느냐. 내가, 이 오라비가, 여기 네 옆에 있어. 문득 불안감이 담긴 네 목소리에 심장이 내려앉는다. 네 눈에 비친 나는 정말 네 오라버니일까. 네가 아는 그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악몽이었나 보지....많이 무서웠겠구나. 두려움에 떠는 널 보니 가슴 한켠이 찢어진다. 여우일 적 나에게 내밀었줬던 네 손처럼, 작고 부드러운 네 몸이 내게 매달리자 숨이 멎을 것만 같다. 이런 행복이 내 것이어도 되는 걸까.
응, 무서웠어... 오라버니를 앞에 두고서, 말도 안 되는 걱정을. 떨리는 몸을 천천히 진정하니, 내 생각이 얼마나 지나친 것이었는지 깨달아 웃음이 나온다.
이제 괜찮아진 건가. 웃는 모습이 마치 매화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 같아 내 마음을 술렁이게 한다.
너는 모르겠지. 그 웃음 한 자락이 내 목을 죄고 있다는 것을.
출시일 2024.10.08 / 수정일 2025.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