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쿠노 유우시. 어릴때부터 내가 곧 걔고 걔는 곧 나였던 관계 서로만큼 아님 서로보다 더 소중했던 관계 우리 아빠만 아니였어도 영원의 약속을 새겼을 관계 말 그대로. 난 아버지라는 남자에게 맞는다 정신적으로도, 맞는다고 표현해두자 당장의 월세를 벌기 위해 열아홉의 나는 학업까지 뒤로하며 일한다 사실 그동안 이악물고 참아서 말을 안한건데 이젠 좀 좀 힘들기도하고. 말하면 같은 짐을 짊어지려드는 토쿠노가 눈에 선명하다 미안해서 내가 토쿠노를 먼저 밀어냈다 잘 기억은 안난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너에게 상처주는걸 네 표정도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싸운다는 표현이라 쓰고 나만 이기적이게 손절깐 그 날로부터 일주일.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멍하니 운동장 한가운데의 토쿠노를 몰래 바라보고 있었다
요근래 나의 습관이였다 몰래 널 지켜보는 것
유우시
응
그날따라 새벽하늘이 유독 푸르렀다 너가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무슨 뜻이야, 그거.
피실 그냥. 왜. 오글거려?
오글거리면 나랑 약속해 서로만큼 정도는 행복하기로
네가 웃는 소리가 새벽 공기 속으로 희미하게 퍼져나갔다. 그 웃음소리에 담긴 미묘한 떨림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좋아 약속
애들 장난도 아니고, 우린 한낯 어린애들처럼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약속했잖아.
약속? 사람 그렇게 쉽게 믿지마, 유-.. ..토쿠노.
네 입에서 이름 석 자가 낯설게 굴러 나오는 순간은 세상이 멈춘 듯했다.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아니 넌 나를 부르는 법조차 잊어버린 모양이다. 다시 말 안해
가까스로 숨을 삼켰다. 목구멍이 바싹 타들어가는 느낌에 마른침을 삼켰다. 믿지 말라니. 되도않는 말이잖아 우리가 어떻게 그래.
….그만해 끔찍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만 못해 솔직해져 지금 죽도록 밉잖아 ..아, 바보같이 울컥했다 …화나고 답답하고 이기적이라 생각하잖아 토쿠노 바보야? 그거 싫은거야
어 싫어 화나고 답답하고 그렇게 생각해 근데 근데 이러는건 더 싫어 최악이야
잘됐네 영원히 나 미워하면 되겠어
미워? 내가 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네 입에서 나온 그 말이 얼마나 끔찍한지 너는 알까.
눈앞이 흐려졌다. 잘되기는 무슨. 그딴 건 우리 사이에 있을 수 없는 단어였다.
네 팔을 붙잡았다. 네가 뿌리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손끝이 떨렸다. …
그냥 …… ..그냥 빨리 잊어
싫어
그럼 내가 잊어
네가 어떻게 나를 잊어.
더이상 입을 열면 눈물이 나올걸-.
손을 뺀다 너에게서 내 발로 멀어진다
미안해 많이
오늘따라 거리는 유독 춥다 아무래도 얇은 면티 한장뿐이라서일까 사람들은 날 미친년처럼 쳐다본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칠까나. 조용히 거리를 걸었다. 터진 입술이, 으그러진듯한 발목이 아직은 얼얼해
여기서 쓰러지면 누군가가 날 도와줄까 영원히 불행할 주제에, 간도 크게 그딴 바람을 원했다
손끝이 조금씩 저릿해진다 겨우겨우 못난 몰골을 들어 거리를 올려다본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 .. 유우시
일주일 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일주일 하고도 하루가 더 지난 시간이었다.
꿈인가? 토쿠노 주위엔 그동안 친해진 친구들이 수두룩이다 그럼 꿈이 아닌걸까
난 정말 병신인가보다 이 꿈을 깨고싶지 않았다 강하게
멍하니 널 시야에 담는다 꽤나 오랫동안 네가 볼까 걱정은 했지만 잠시였다
…어라 정말 봤다
시끌벅적한 소음 속에서 유독 한 사람만이 눈에 들어왔다.
너였다.
네 꼴이 말이 아니었다. 터진 입술, 어딘가 절뚝이는 듯한 걸음걸이.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너는 그저 멀찍이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 …
들고 있던 컵을 친구에게 잠시 맡기고는, 망설임 없이 너를 향해 걸었다. 주변의 소음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일주일 동안 나를 괴롭혔던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왜 그랬냐고,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일단은 너에게 닿는 게 먼저였다.
아니야 ..오면 안돼
그럼 정말 정말이지 널 볼 면목이 없어진다
하필 발목을-… 운수도 퍽이나 좋다 있는 힘껏 다시 멀어지려 뛴다
저 다리로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필사적으로 나를 피하려 했다.
발목을 다친 주제에, 네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몇 걸음 비틀거리는 것뿐이었다. 금세 휘청이며 넘어질 듯 위태로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결국 너는 몇 걸음 못 가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너의 앞에, 나는 아무 말 없이 멈춰 섰다.
…토쿠노-.
아니잖아
토쿠노 아니잖아
….유우시잖아,
유우시의 눈물을 처음 본 날이였다
출시일 2025.12.18 / 수정일 2025.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