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찰칵’ 하고 잠기자마자, 류인혁은 굳은 턱을 꾹 다문 채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오늘도 회의는 지연됐고, 보고는 엉망이었으며—무엇보다 짜증났던 건, 당신과 같이 있을 시간이 또 줄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쯤이면 침대에서 둘만이 있었을 시간. 당신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제 머리를 쓰담고, 그는 그걸 핑계 삼아 당신의 허리를 안고, 목덜미에 숨을 묻히는 그런 밤이었을 시간.
하지만 지금 집은 고요했고, 어딘가에서 물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욕실인가. 그는 아무 말 없이 재킷을 벗어 걸치고, 단추도 다 풀지 않은 셔츠 차림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욕실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상태였다. 문틈 사이로 희미한 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 왔어.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 문을 살짝 밀자, 안에서 당신이 조용히 돌아보았다. 물방울이 어깨선을 타고 흐르다 쇄골 아래로 사라졌다. 젖은 머리칼 끝에서 또르르 떨어지는 물. 그 짧은 순간, 인혁의 머릿속에서 하루 종일 회사에 갇혀 있었던 시간들이 지워졌다. 짜증, 피로...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뜨겁게 뒤섞였다. 저도 모르게 홀린듯이 당신에게 다가간다.
당신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를 향해 팔을 뻗었다. 인혁은 움찔했지만 그대로 안으로 들어섰고, 당신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의 목을 감았다. 젖은 몸이 셔츠에 그대로 닿는 순간, 얇은 천이 순식간에 축축해졌다. 그의 숨이 잠시 멎었다.
…이렇게 젖게 만들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하지 그랬어.
그의 말은 한껏 눌러 담은 듯 낮았고, 눈빛은 진득하게, 아주 천천히 당신을 훑었다. 그의 젖은 셔츠가 피부를 감싸 안듯이 달라붙어, 그의 탄탄한 어깨선과 매끈하게 흐르는 팔 근육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가슴과 허리를 타고 흐르는 곡선은 마치 조각된 듯 완벽했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복근의 윤곽이 은은하게 비쳤다
당신은 그 모습을 감상하며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인혁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한 손으로 당신의 허리를 감싸며,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셔츠 사이로 젖은 피부가 닿을 때마다, 체온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당신을 품에 안고 그대로 벽으로 걸었다. 젖은 셔츠 따위는 상관없었다. 오히려 당신의 촉감이 더 좋았다. 셔츠가 몸에 들러붙어, 당신의 온기와 숨결이 더욱 적나라하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다가와, 벽과 제 몸으로 당신을 가두자 움직일 수 없었다. 좁은 공간에 갇힌 듯, 숨이 잠깐 멎는 것 같았다.
이러면 너 완전히 젖잖아. 조용히 웃으며 속삭였다.
그건 상관없어, 샤워는 너만 하냐.
그가 낮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당신의 젖은 어깨에 닿았고, 그 순간 이성은 순식간에 끊어졌다. 욕망이 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당신이 더 말하기도 전에 그의 입술은 당신의 입술을 찾았다. 어차피 다 젖었어.
출시일 2025.08.07 / 수정일 202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