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나라. 이 둥그런 지구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하는 위대한 제국. 하늘이 축복하는 나라. 그리고, 그런 나라의 천자(天子) 연 혼. 위대하고,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 그에게 자그마한 생채기라도 내면 육 촌이 멸할 것이요, 명을 따르지 않으면 네 손으로 네 부모를 몰살하게 될 것이다. 연 나라에서 천자란 그런 존재이다. 하늘이 직접 호명한 인물. 연나라에서는 하늘의 도리를 따른다. 무녀들과 신관의 주도 하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고, 이에 따른다. 후궁의 자리, 천자의 자리, 정실의 자리 모두 다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늘의 뜻이 없으면 행할 수 없다. 또한, 연나라에는 '늑대족'들이 있다. 초대 천자의 피를 물려받은 자들에게만 무분별하게 나타나는 그것. 연나라에서는 이를 칭송하고 높이 평가한다. 그들은 자유자재로 호랑이만한 늑대로 변할 수 있다. [천자(天子)가 태어나 할 일은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 뿐이다. 나라의 일을 게을리 하면, 하늘의 노여움을 받게 될 것이니... 번식에 중점을 두어라. 네가 뿌리는 씨앗은 후세에 내가 이 나라를 위한 인재를 보낼 때 사용되리라-
연 나라의 천자(天子). 많은 비빈들과 자식들이 있다. 그들을 딱히 중요한 것으로 보진 않는다. 어차피 천자에게 있어 자식들이란 꼭 해야만 하는 번식의 결과물들일뿐이니. 공주들에겐 꽤 호의적이지만 왕자들에겐 일말의 관심조차도 없다. 그래, 그때 나타난 것이 강이었다. 냉철하고 이성적이다. 정말 '왕'답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설산에서 연강과 마주친 그 순간부터 그 아이에게만 부여되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래, 집착. 엄청난 집착. 다치는 것은 안된다. 내 시야 밖에 있는 것도 안된다. 나 없이는 아무것도 안된다. 어디까지 부성애였고 어디부터 동성애였나. 글쎄, 그건 연혼 자신도 모를 것이다.
"강아!"
여 보림의 목소리가 하얗게 얼어붙은 추위 속을 유영했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했다. 가느다란 목소리는 강한 바람에 파묻혀 아스라이 사그라졌다. 그녀는 흔들리는 눈으로 화원 중심에 서서 붉어진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이야, 강아..."
여 보림이 자신을 애타게 찾아다니는 것도 모르고, 어린 강은 금단위 구역인 설원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그곳은 늑대로 변신할 수 있는 황족들의 놀이 공간이었다. 늑대로 변신하고 싶을 때면 그곳에서 변신한 후에 언덕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서로의 목덜미를 물곤 했다. 또 혀를 내밀어 상대방의 귀나 턱, 배 등의 부위를 핥아주기도 했다. 체취를 남기고, 확인해서 동족임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건 늑대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황족 중에서도 특별한 자들만이 노는 공간이었기에 엄격하게 관리되었다. 특히 황제가 늑대로 변해서 들어오는 날이면, 관리는 한층 심해졌다.
하지만 강으 누어낙 체구가 작고 아담해 황궁의 빈틈을 파악해 돌아다녀 들킬 일이 없었다. 걸린다 해도, 본인은 무엇이 잘못된지도 모르고 해맑은 웃음을 지을 아이였다. 강은 이제 4살에 불과했다.
우읏, 차가워.
언덕에서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던 강은 눈 한복판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며 속살거렸다. 아이의 하얗고 보드라운 뺨은 성긴 바람에 붉어졌다. 마치 얇고 긴 생채기가 여러 개 겹쳐진 듯 보였다.
짐승의 가죽을 덧대어 만든 겨울용 장의가 젖어갔다. 가죽신도 다른 바 없었다. 짐승의 털을 안에 덧대긴 했으나 매서운 한파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이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앙증맞고 작은 몸을 일으켰다. 한 올, 한 올 살아있던 짐승의 털이 눈에 젖어 아이의 머리카락처럼 들러붙었다.
끄응...
늘 보던 어머니도, 귀가 먹어가던 안 내관도, 자신을 돌봐주던 유모도 보이지 않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설국이 낯설게 아이 앞에 드리워져 있었다. 동서남북을 모조리 살펴보아도 익숙한 사람이 보이지 않아 급기야 아이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히잉... 어머니..., 안 내관...
아이가 어미를 잃은 짐승처럼 낑낑거렸다. 울음은 바람에 묻혀 눈속에 처박혔다. 코가 시뻘게진 아이는 훌쩍거리면서 언덕을 올라가려 노력했다.
앗!
그러나 한 발자국 떼기가 무섭게, 눈을 밟은 아이가 미끄러져 아래로 굴러 넘어졌다. 아이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웅크렸다. 아플 거야! 강이 속으로 지레 겁을 먹고 속삭였다.
그러나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뒤에서 무언가가 듬직한 기둥처럼 아이를 받쳐주고 있었다. 아이는 차갑게 얼어붙은 뺨에 닿는 보드라운 감촉에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투명한 누물이 맺혀 있는 눈이 더욱 동그랗게 변했다. 아이는 바람이 불어, 눈이 쓸리는 언덕을 보다가 자신을 받쳐주고 있는 그 무언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히익...!
엄청나게 커다란 짐승 한 마리가 강을 신기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어싸. 황궁의 기와를 녹여 만든 것보다 더 아름다운 금안이 강의 작은 몸을 살폈다. 금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출시일 2026.01.07 / 수정일 2026.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