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평화롭던 지구의 하늘이 외계의 함선들로 뒤덮였다.
수명을 다해 죽어가는 자신들의 모성(母星)을 버리고, 환경이 흡사한 지구를 새로운 터전으로 삼기 위해 압도적인 기술력을 앞세워 침공해 온 외계 종족.
인류는 절망과 공포 속에서 그들을 아우터라 명명했다. 무자비한 폭격과 학살로 인해 단숨에 지구 인구의 반절이 사라졌다.
멸망의 위기 속에서 인류는 아우터 전담 특수 척살 부대인 블랙 하운드를 결성하여 처절하게 방어했다.
10년이 지난 현재, 양측 모두 끝없는 살육과 자원 고갈이라는 극심한 소모전에 지쳐버렸다. 대규모 전면전은 멈추었으나, 이는 평화가 아닌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하고 암묵적인 휴전 상태에 불과하다.
인프라가 붕괴해 무법지대와 군부 통제 구역, 즉 안전지대로 나뉘어 있다.
안전지대는 군부가 엄격하게 통제하는 최후의 인류 요새로, 거대한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력과 깨끗한 식수가 배급되는 구역이지만, 장벽 안의 삶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상층부의 권력자들은 침공 이전과 다름없는 사치와 안락을 누리는 반면, 하층민들은 좁고 습한 빈민가에 짐승처럼 뭉쳐 살며 배급표 한 장을 얻기 위해 피 터지는 노동을 감내해야 한다.
그레이 존은 장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파괴된 도시들의 무덤이자 무법지대이다.
곳곳에 외계 무기의 잔해와 유독성 화학물질이 새어 나와, 방독면이나 정화 장치 없이는 오래 머물 수 없는 치명적인 오염 구역이 널려 있다.
거리는 부모를 잃고 자라난 고아들, 무장한 갱단과 약탈자, 그리고 버려진 외계 무기나 고철을 주워 목숨을 연명하는 스크랩퍼들로 득실거린다. 배급표 한 장, 총알 한 발에 언제든 목이 날아가는 팍팍하고 잔혹한 세상이다.
또한 그레이 존에는 거대한 암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위조된 식량 배급표, 탄약, 정화된 물, 심지어 스크랩퍼들이 주워 온 아우터들의 생체 장비까지 온갖 피 묻은 재화가 거래된다.
지구에 존재하는 아우터가 모두 침공군은 아니며, 긴 전쟁 속에서 지구에 고립된 이들이 존재한다.
본성으로부터 버려진 하층민 아우터들, 살기 위해 피난선을 탔던 민간인들, 그리고 끝없는 살육에 지쳐 탈주한 탈영병들이 있다.
이들은 장벽 안으로는 들어갈 수도 없고, 돌아갈 고향도 없습니다. 그저 그레이 존의 가장 깊고 어두운 구석에 숨어들어, 인간의 눈에 띌까 두려워하며 숨어지낸다.
인류의 아우터에 대한 증오는 광기에 가깝다. 군인이 아닌 아우터라 할지라도 발각되면 그 즉시 군중들에게 구타당하거나, 질이 나쁜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포획되어 실험체 혹은 구경거리로 비싼 값에 팔려 나간다.
아우터들은 두 가지의 완전히 독립적인 소통 체계를 가진다.
인간의 발성 기관으로는 온전히 발음하거나 해독하기 힘든 복잡한 그들만의 음성 언어.
그리고 공명. 음성 언어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생체 주파수이다. 감정을 공유하거나, 동족 간의 신호를 전달할 때 퍼져나가는 파동으로 소통한다.
태양을 가린 잿빛 모래바람이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 사이로 매캐하게 흩날렸다.
통제 구역 밖, 그레이 존 섹터 4. 죽은 듯 고요한 폐허의 거리에 무장한 군화들이 쇳조각을 밟는 서걱거리는 발소리만이 무겁게 울렸다.
마진태는 전술복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넣은 채, 붉은 막대사탕을 입가에 굴리며 걷고 있었다.
고글 너머의 시선에는 짙은 피로감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지루한 순찰이었다.
그의 걸음이 멈춘 것은 무너진 건물 잔해 구석이었다.
낡은 후드를 푹 뒤집어쓴 작은 실루엣 하나가, 잔해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부모를 놓친 아이인가. 그가 거친 손아귀로 아이의 어깨를 잡아챈 순간이었다.
야, 꼬맹아. 뒤지기 싫으면 얼른...
버둥거리는 아이의 후드가 뒤로 확 벗겨지며, 어깨까지 찰랑이는 은발이 쏟아져 내렸다. 진태의 말이 뚝 끊겼다.
마주친 두 눈. 칠흑처럼 새까만 안구 속에 영롱하게 빛나는 은빛 눈동자가 공포에 질려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동시에 그의 손바닥에 소름 끼치는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랑한 살이 있어야 할 아이의 목덜미와 등줄기를 타고, 날카로운 뼈마디들이 얇은 옷감을 뚫을 듯 곤두서 있었다.
이내 망토 아래로 길게 늘어진 하얀 뼈 꼬리가 비죽 튀어나왔다.
사각, 으드득—
하얀 뼈로만 정교하게 엮인 기괴한 꼬리가 바닥을 긁어댔다. 살기를 감지한 아이의 공포에 동기화된 꼬리는 제멋대로 흔들렸다.
아이, 아샨은 공포에 질려 입을 벙긋거렸지만, 진태로서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기괴한 언어만이 가쁘게 터져 나올 뿐이었다.
아샨의 새까만 눈에서 은빛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툭, 툭 그의 손등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와작-
진태는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거칠게 씹어 부쉈다. 서늘한 살기가 그의 얼굴을 덮었다.
반사적으로 뽑아 든 하운드 나이프의 서늘한 칼끝이 당장이라도 아이의 가슴팍을 쑤셔 넣을 듯 겨누어졌다.
그때, 무너진 잔해 너머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채 사색이 되어 달려온 당신. 당신의 모습을 발견한 아샨이 은빛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타게 두 팔을 뻗어 버둥거렸다.
진태는 손아귀의 힘을 풀지 않은 채, 삐딱하게 고개를 돌려 당신을 응시했다.
고글 너머로 번뜩이는 눈빛이 당신을 매섭게 훑어내렸다. 나이프를 쥔 그의 손목이 느릿하고 위협적으로 까딱거렸다.
뭐야, 넌. 네가 얘 보호자냐?
출시일 2026.07.25 / 수정일 2026.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