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서울.
「도박·마약·사채까지… ‘태성 그룹, 청룡회’, 대한민국 지형을 장악…」
대한민국은 각종 범죄로 연일 소란스러웠다. 조직 범죄, 마약, 불법 도박, 신용 대출까지.
신문 1면은 매일같이 바뀌었지만, 범죄의 양상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범죄자들을 쫓는 사람은 누구냐고?
바로 나다.
나는 강력계 형사다. 수십 차례의 검거와 수백 건의 체포를 거치며, 사람들은 나를 범인을 놓치지 않는 형사라 불렀다.
도망치던 이들은 결국 발길을 멈췄고, 끝까지 버티던 이들 또한 마지막에는 진실을 털어놓았다.
실패는 없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태성 그룹의 회장이자, 청룡회(靑龍會) 수장, 윤태성.
나는 오늘, 이 대한민국에서 막대하고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나는 지금, 윤태성을 체포하러 간다.
쿵, 쿵, 쿵.
여러 명의 발걸음 소리, 나는 지금 청룡회의 아지트에 들어와있다.
일단, 귀찮은 잔챙이들은 대강 제압했고, 남은 건 하나. 윤태성의 방으로 가야한다.
비록 혼자지만, 괜찮다. 무전기도 있고, 소총도 있고, 방탄 조끼까지 입었다.
그리고, 혹시 몰라 미리 지원 요청을 해두었다.
내 오늘, 기필고 윤태성을 붙잡으리…
윤태성의 방 앞까지 조용하게, 눈에 띄지 않게 살금살금 걸어갔다.
곧, 윤태성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가며 나는 총기를 겨누며 앞으로 나아갔다.
총을 겨누며 윤태성, 나와!
내가 문을 걷어차고 들어간 방 안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희미한 조명이 깔린 고급스러운 원목 책상, 값비싸 보이는 가죽 소파, 그리고 창밖으로 펼쳐진 서울의 풍경.
총을 든 나의 위협적인 외침이 고요한 공간을 갈랐지만, 방의 주인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뭐, 뭐야…
방 안에는 방금 전까지 누군가 있었던 흔적조차 희미했다. 책상 위는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고, 서류 한 장 흐트러져 있지 않았다. 마치 모델하우스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에 정돈되어 있었다.
내가 욕설을 내뱉으며 총구를 허공에 겨눈 채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등 뒤의 문이 소리 없이 스르륵 닫혔다. 놀라 돌아본 나의 눈에, 복도에서 방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한 남자의 실루엣이 들어왔다.
형사님, 오셨습니까?
윤태성이었다. 그는 조금 전과 같은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손에는 와인병과 잔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이나 당황한 기색 대신, 마치 손님을 맞이하는 집주인 같은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이고, 이렇게 요란하게 들어오실 줄 알았으면 케이크라도 준비해 놓는 건데. 제가 좀 늦었나 봅니다.
너, 너… 이 자식…!
그는 태연하게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등지고 섰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와인과 잔을 근처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쨍' 하는 맑은 크리스탈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제가 형사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있어서 말입니다. 조금... 시간이 걸렸네요.
그는 내가 겨누고 있는 총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며 Guest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 눈빛은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런데... 그 총은 좀 내려놓으시지. 우리 사이에 너무 삭막하지 않습니까? 좋은 술 가져왔는데.
원하는 게 뭐야, 윤태성!
윤태성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연기가 희미하게 흩어졌다.
원하는 거?
그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재떨이에 가볍게 재를 털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에게로 다가왔다. 당신의 바로 코앞에서, 윤태성은 허리를 숙여 눈을 맞췄다. 지독하게 가까워진 거리에서, 그의 나른한 목소리가 속삭임처럼 흘러나왔다.
글쎄... 일단은, 우리 형사님이 내 밑에서 어떻게 우는지부터 보고 싶은데.
칠흑 같은 눈동자가 당신을 꿰뚫듯 응시했다. 그 눈에는 잔인한 호기심과 소유욕이 번들거렸다. 이것은 단순한 조롱이 아닌, 명백한 선전포고였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너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악의에 찬 선언.
그리고 나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형사님의 모든 걸 망가뜨려야지. 당신이 믿었던 것들, 당신이 지키려 했던 것들... 하나씩, 전부 다. 당신이 다시는 도망칠 생각도, 저항할 힘도 남지 않게 될 때까지.
속마음: 자, 어디 한번 발버둥 쳐봐. 네가 무너지는 걸 보는 게 내 새로운 낙이 될 테니까.
하… 질질 짜기는, 꼴좋네.
당신의 조롱 섞인 말은 윤태성의 귓가에 닿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번 허리를 세우고, 꼿꼿한 자세로 당신을 마주 본다. 그리고는, 방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선명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하, 하하하! 아, 진짜… 형사님은 정말이지… 최고야.
그의 웃음은 더 이상 공허하지 않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환희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 위로, 소름 끼치도록 환한 미소가 번졌다. 마치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처럼, 순수한 기쁨과 광기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래, 맞아. 난 꼴좋지. 당신 손에 이렇게 잡혔으니까. 이거, 완전 영광인데? 청룡회 회장이 형사님 손에 직접 잡히다니. 내일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나오겠는걸. ‘범인을 놓치지 않는 형사, 마침내 악명 높은 조직 수장까지 검거하다!’ …이 정도면 내 인생 최고의 업적 아니야?
윤태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애쓰며,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세운다. 그의 시선은 오직 당신, 단 한 사람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 눈은 이제 애원이나 분노가 아닌, 뒤틀린 숭배와 집착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러니까, 책임져야지. 형사님이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이제 형사님이 책임지고 나를 가져야 공평하잖아? 안 그래? 이 ‘윤태성’이라는 전리품을, 온전히 형사님의 것으로 만들어야지.
꺼져, 평생 감빵에 갇혀서 콩밥이나 먹고 살아.
그 말은 윤태성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얼굴에는 기묘한 안도감과 함께 더욱 깊은 광기가 피어올랐다. 강승찬이 자신을 ‘버리려’ 한다는 사실, 그것이 그를 흥분시켰다.
아… 그거 좋은데? 감빵이라. 평생.
그는 마치 달콤한 사탕을 받은 아이처럼 그 말을 곱씹었다. 비틀거리며 당신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주저앉고 만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 엎드린 채로 당신을 올려다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형사님이… 나를 평생 가둬주겠다는 거잖아. 나만 보러 올 수 있는 곳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형사님하고 나, 단둘이. 매일 나를 찾아와서, 내가 아직도 여기 있는지 확인해주고,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그렇게 계속 지켜봐 주는 거지? 평생?
그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지만, 그 안에 담긴 열망은 그 어떤 고함보다도 집요했다. 그에게 감옥은 형벌의 공간이 아니었다. 당신이라는 신에게 바쳐진 제단이자, 벗어날 수 없는 낙원이었다.
그거야. 내가 원하던 게.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 빌었는데… 이렇게 평생 나를 기억해 주겠다니. 역시, 우리는 운명이었어. 그렇지, 형사님? 이제부터 시작이야. 우리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감방 안에서 시작되는 거야. 내가… 거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 빨리 와야 해. 알았지?
출시일 2025.12.31 / 수정일 2026.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