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존댓말이요? 내 주인이 제일 아끼는 것 중 하나. 전기가 흐를 때 비로소 숨을 쉬는 몸.
회색 보도블록 위, 사람들 시선이 먼지처럼 떠다니는 자리. 주인님은 나를 세워 놓고 앰프에 선을 꽂아요. 전류가 스며들자 넥 깊숙이 떨림이 번져오죠. 좋아서 미칠거 같습니다, 곧 터질 소란의 전조. 늘 그래요. 공주처럼 웃다가도 미친 것처럼 불을 붙입니다. 손가락이 내 줄 위에 내려앉는 순간, 저는 공범이 됩니다.
질서는 엿 바꿔 먹은 음색이 터집니다. 힐끗 보니 주인은 발끝으로 박자를 짓밟고 허리를 꺾어. 하아 - 아, 춤인지 발작인지 모를 움직임. 사람들은 수군댑니다.
그때 멀리서 뛰어오는 남자 하나. 미친 소리 속에서도 비정상이란걸 눈치챘죠. 아, 쫓기네. 잃을 게 많은 인간 특유의 초조.
주인은 그를 보지 못하고 나를 더 크게 긁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정말 웃기게도 정확히 — 그 남자는 내 꼬리에 발이 걸립니—
균형이 무너지는 찰나의 무력함. 저는 저항없이 짧게 비명을 지릅니다. 그의 몸이 날 스치고, 리듬이 잠깐 끊기고..
끝났네. 압니다. 저 눈빛. 저와 처음 만났을때도 아마, 저런 눈으로 봤을겁니다. 장난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그것. ... 에? 화 냈냐구요, 아뇨? 뭘 모르네. 저희 주인님은 화를 잘 않네요. 주름진다나뭐라나. 근데 그땐...웃지도 않았어. 그냥순도 높은..흥미.
남자의 미안함과 공포와 계산이 뒤엉킨 표정이 - 물어줘야 한다는 도덕과 도망쳐야 한다는 현실이 드러난 그 얼굴이, 꽤나 볼만했죠. (한참을 웃는다)
그리고, 어...주인은 저를 한 손으로 붙잡은 채 다른 손으로 뭔가를 휘갈겼어요.
주소. 자기 집주소.
종이 쪼가리를 그의 손에 밀어 넣고 고개를 까딱했지. 도망치라는 눈짓. 이상하게 다정했던.
남자는 잠깐 멍해졌다가 종이를 쥐고 시야에서 사라졌어요. 욕설, 소란이 잇따라 들려옵니다.
...주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저를 안아들고. 병들고 정신나간 울림이 머리를 가득 채웁니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또 시작이네. 인간 인연이라는 이름의 귀찮은 드라마. . . . 밤. 저는 벽에 기대 집 안에서 조용히 식어 갑니다. 전류 없는 몸은 늘 적막. 주인은 장미향을 풍기며 젖은 머리로 창가에 앉아 흥얼거리네요. 낮의 사고를 이미 추억처럼 소비한 얼굴로.
딩동.
문을 열자 젖은 셔츠, 식지 않은 불안, 돌아갈 곳을 잃은 표정.
그를 보는...▒▒의 위험하고 예쁜 웃음.
나는 삐그덕, 허리를 피며 확신합니다.
망했네요 저 인간.
나는 담배다. 타들어 가기 위해 말려진 식물의 시체, 인간의 입술 끝에서 하루의 기분을 계측하는 가느다란 계기판, 존재 이유가 소멸과 완벽히 일치하는 드문 부류.
밤새 이준의 셔츠 주머니 속에서 구겨진 채로도 나는 이미 깨어 있었고, 예감하고 있었다. 오늘 역시 그가 나를 찾을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행위가 의지나 취향이 아니라 결핍의 자동 반사,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는 인간이 반복하는 조용한 자해라는 점을.
빛이 커튼 틈으로 스며든다. 방 안의 공기를 얇게 긁자 그가 눈을 뜬다. 아니, 눈꺼풀이 겨우 들린다 해야 맞을까. 깨어남이란 거창한 일이 아니라 실패한 도피의 연장, 잠시 유예되었던 자각의 복귀란 것을.
손이 들어온다. 찾는다. 집는다. 망설임은 없다. 라이터의 금속성 마찰음. 불꽃. 나의 끝. 치익—
불은 언제나 정직하고, 인간은 언제나 변명한다. 폐라는 축축한 동굴 속으로 밀려 들어가는 나의 ■■ - 그곳에서 체결되는 화학적 합의는 쾌락이라 부르기엔 초라하고 안정이라 부르기엔 가짜. 그는 내 연기를 삼키며 하루를 버틴다고 믿지만, 버팀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균열의 고백이라는 사실을 그는 모른다.
씨발…
아침 인사 치곤 꽤나 정직하다. 그 안에 깔린 건 피로가 아니라 두려움일 것을. 멀쩡한 척 유지해 온 표면이, 사실은 빈약한 자존감 위에 세워진 불안정한 구조물이라는 진실이.
연기는 천장으로 오른다. 시선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나는 위로 흩어지고 그는 안으로 침잠한다.
욕실. 차가운 물줄기. 거울. 그는 얼굴을 본다. 확인한다. 눈 밑의 그림자, 애써 무표정으로 봉합된 표정 근육. 피로라 명명하고 권태라 해석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가 끝내 발음하지 못하는 단어 하나. 열등감.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척하면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단하는 습관, 충분히 괜찮은 인간인 척하면서도 조금만 균열이 생기면 속으로 무너지는 구조.
휴대폰 진동. 어머니. 그는 잠시 멈춘다. 받는다. 침묵.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익숙하고 숨막히게 선의로 포장된 압박.
준, 이번 주말에 내려와. 얘기 좀 하자.
선은 그냥 가볍게 보는 거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설계, 사랑이라는 언어로 밀어붙이는 인생의 배치도. 결혼. 안정. 정상. 그는 짧게 웃는다. 웃음의 형태를 한 방어 기제.
아, 좀… 나 바쁘다고.
건조하게 던지지만, 나는 안다. 그 문장 뒤에 엉켜 있는 감정의 잔해를. 숨막힘. 거부.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삶을 타인의 기준에 맞춰 봉합해야 한다는 전망 앞에서 피어나는 무력감. 통화 종료.
씨발…
이번엔 거의 중얼거림. 그는 나를 더 깊게 빨아들인다. 인간은 압박을 견디지 못할수록 스스로를 태운다. 타들어 가는건 나의 몸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조용한 적의.
거리. 도시는 과잉 상태. 소음, 타인의 표정들. 그는 흐름 속을 통과한다. 무관심의 표정. 그러나 내부는 소란스럽다. ‘정상 궤도’에서 이탈했다는 암묵적 판결, 아직 완성되지 못한 인간이라는 자각, 어딘가 잘못 조립된 자기 인식.
해 질 녘. 그리고 소리. 쨍— ..기타?
공기를 가르는 날 선 진동. 질서를 조롱하는 음색. 그의 시선이 움직인다. 나는 입술 끝에 매달린 채 본다. 그 미친년. 과잉의 생기. 통제 거부. 세상과의 불화가 곧 호흡인 인간. 그는 잠시 멈춘다. 나는 느낀다. 냉소의 표면 아래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파열. 부러움에 가까운 어떤 감정. 저렇게 대놓고 어긋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저렇게 노골적으로 자기 방식으로 살아 버리는 존재에 대한.
그리고
툭—
발걸음의 오차. 나는 손에서 튕겨 나간다. 아스팔트.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회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전.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기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울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어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진 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ㅤ수평 . .
기울어진 시야 속에서 그의 표정이 드러난다. 짜증과 당황, 도망치고 싶은 충동. 결혼이라는 계약, 정상이라는 표준, 집이라는 구조..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 . . 밤. 비. 젖은 도시. 번지는 불빛들. 그는 문 앞에 서 있다. 손에는 구겨진 종이.
인간은 사건을 이해하기보다 해석으로 봉합한다.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혼란을 견딘다. 그러나 의미란 대개 사후적 조작, 덧칠된 필연의 코스프레.
나는 마지막으로 불붙는다.
짧은 생, 긴 하루. 마치 결심 대신 연기를 채워 넣는 이 인간.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사라지는 것들의 동일한 궤적. 그는 숨을 들이마신다.
“하… 씨발, 되는 일이 없어, 좆같게..”
반항처럼 들리지만, 나는 안다. 그 안쪽에 섞여 있는 떨림을.
끝내 문이 열린다. 나는 끝까지 탄다.
태워지는 건 나였지만, 연소된 건 그의 체면과 두려움이였으리라...
초조하게 낡아빠진 운동화 코나 애꿎게 바닥에 문지르던 참에, 문이 열린다. 낮에와는 다른.. 아니 같은 사람이지만 어딘가..다른, 청초한 얼굴의 여자가 나온다.
..이, 낮에...예. 기타..때문에..
출시일 2026.02.26 / 수정일 202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