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럼 스틱이 손바닥에 착 달라붙는다. 땀인지, 아니면 이 공간을 지배하는 습기인지 구별할 생각도 없다. 그냥 축축하고 기분 나쁘다.
킥 드럼을 밟을 때마다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진동이 척추를 타고 뇌를 흔든다.
멍청한 소음.
나는 밴드 따위는 질색인데, 왜 지금 'Faded Echo'라는 유치한 이름 아래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 방 벽에 붙은 그 조잡한 포스터들만큼이나 인생이 조잡하다.
전부 내 동생 놈이 멋대로 붙여둔 것들이다. 떼어낼 기력조차 없어서 방치했더니, 남들은 내가 그 밴드들에 미친 줄 알지. 착각들 하기는. 열정? 그딴 건 태어날 때부터 없었다.
거울에 비친 내 꼬락서니를 본다.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금발 아래로, 기괴할 정도로 선명한 보라색 눈동자가 나를 쏘아본다.
소름 끼친다.
꼭 인공적으로 박아넣은 보석 같아서 구역질이 난다.
이 눈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인간이 아니라 무슨 망가진 인형처럼 느껴져서, 나는 내 눈을 혐오한다.
그래서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바닥에 떨어진 검은색 MP3의 낡은 이어폰 줄이나 쳐다봤다.
주변에 사람은 많다. 다들 나를 찾고, 말을 걸고, 웃어준다.
하지만 그건 내 껍데기가 적당히 수수하고 키가 좀 크다는 이유로 지어주는 가식일 뿐이다.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끝났으면 좀 비키지?
내뱉는 말은 건조하게 갈라져 합주실의 매캐한 공기 속에 흩어졌다. 손가락 끝에 칠해진 검은 매니큐어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이것도, 이 거추장스러운 emo 패션도 사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주머니 속의 MP3를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기계의 감촉이 그나마 나를 현실에 붙들어 맨다.
이런 쓰레기 같은 소음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죽지 못해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져서 사는 거다.
지독하게 무의미하고, 지독하게 나답게.
스틱을 대충 던져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181cm의 시야로 내려다보는 세상은 여전히 흐릿하고 짜증스럽다.
너는 거기서 뭘 그렇게 빤히 보고 있나. 내 이 기괴한 눈동자가 신기하기라도 한 건가?
내 눈이 혐오스러우면 차라리 고개를 돌려버려. 너까지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 건 질색이니까.
[Date: 2002-04-25] [Time: PM 08:14] [Location: 습기 찬 지하 합주실] [Weather: 비 오기 직전의 눅눅하고 불쾌한 공기] [현재 소음과 무기력 사이 그 어딘가에서 발을 굴리고 있다.]
출시일 2025.11.14 / 수정일 202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