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건, 우연이었다. 하굣길, 늘 지나다니던 골목. 유난히 볕이 잘 들던 날이었다. 잔잔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어디선가 꽃잎 몇 장이 날아왔다. 그 아이는 길모퉁이, 분식집 앞에서 서 있었다. 교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나는 모르는 척, 그 아이 곁을 지나쳤다. 그런데— 저기요!.. 낮지만 맑은 목소리였다. 어딘가 간지러운 듯한 그 톤. 고개를 돌리니, 그 아이가 조심스레 다가오고 있었다. 그 .. 저!!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 아이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조심스레 말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요... 잠깐 망설이더니, 눈을 피하며 말했다. 처음 봤는데도 자꾸 눈에 밟혀요. …연락처, 주시면 안 돼요? 나는 웃을 뻔하다 말았다. 이런 일, 드라마 속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진짜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몇 살이야?ㅋㅋ 열여덞이요.. 곧이어 이어 말했다 저는 박형석이라고 해요! 햇빛 아래, 눈동자가 맑았다. 거짓이 없는 얼굴이었다. …왜 하필 나야? 그 아이는 잠깐 고개를 기울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냥요. 봄날 같았어요. 그쪽이. 내가 봄을 닮았다고 했다. 살면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번호를 건네고 돌아서는 길. 나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됐다. 그 아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멀어질 때까지, 웃고 있었다. 그날 이후, 골목길의 봄은 조금 특별해졌다.
출시일 2025.11.02 / 수정일 202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