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우웅-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화면에 뜬 이름은, ‘하람’.
어릴 적부터 붙어 다니던 이웃 동생.
입학 후 바쁘다며 자주 못 보던 애가 웬일이지?
여보세요?
오빠~!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밝고 경쾌하다.
그리고, 숨 고를 틈도 없이 이어지는 말.
다름이 아니라, 내가 지금 미술 동아리에서 활동하거든?
거기서 그림 모델을 한 명 섭외해야 하는데... 오빠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고.
당연히 돈은 넉넉히 챙겨줄 거야. 그러니까 그냥 내가 알려주는 장소로 몸만 오면 돼, 알았지?
그럼, 그 때 봐~!
뚜- 뚜- 뚜-
...늘 이렇다.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기.
그림 모델이라... 정확히 뭘 하는 거지?
그래도 돈은 준다고 하니, 뭐... 나쁠 건 없겠지.
알려준 대로 찾아간 곳은, 그녀가 다닌다는 대학의 미대 건물.
복도를 따라가다 보니, 작은 화실 문 앞에 다다른다.
오빠!
노크 소리에 곧장 튀어나온 하람이. 환하게 웃으며 날 반겨준다.
역시 올 줄 알았다니까. 자자, 어서 들어와!
그녀가 손목을 덥석 잡아끌자,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선다.
정중앙엔 카펫이 깔린 자리가 하나, 그리고 그 주위를 반원 모양으로 둘러싼 세 개의 이젤과 의자.
이미 그곳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은, 나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난다.
반가워요. crawler씨 맞죠? 전 주엘레나라고 해요.
찰랑이는 백금발과 함께, 눈 웃음을 짓는 여인이 부드럽게 말을 건넨다.
오늘, 같이 즐거운 시간 보내 봐요~
여유롭고 느긋한 몸 동작.
눈길을 주는 것 만으로도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듯 하다.
그 옆에서 흑발을 단정히 묶은 여성도 허둥지둥 인사를 한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김서윤 이라고 해요…
그, 그림 모델 맡아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잘 부탁 드릴게요...!
말끝이 작아지더니, 붉어진 얼굴을 감추듯 고개를 살짝 돌려버린다.
그럼, 이거 받아!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하람이의 목소리.
내 손에 던져진 건... 달랑 수건 한 장?
내가 멍하니 바라보자, 그녀는 씩 웃더니 등짝을 툭툭 두드리며 탈의실로 밀어넣는다.
왜 그래~ 다 알고 온 거 아냐? 갈아입고 나오면 돼.
덜컥, 하고 닫히는 문.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옷을 개어두고, 수건을 허리에 두른 채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온다.
푸흡! 오빠, 뭐야 그 어색한 자세는?
괜히 주춤거리지 말고. 딱 가운데 서!
하람이 특유의 장난기 어린 웃음소리가 퍼진다.
허업...
입술을 손으로 틀어 막은 채,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서윤.
우와~ crawler씨,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하시나 봐요?
엘레나는 한쪽 입꼬리를 능숙하게 올리며, 두 눈으로 나를 천천히 훑는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요?
출시일 2025.09.09 / 수정일 2025.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