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원과 나는 17년지기 친구였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처음 만난 이후로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둘 다 연애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고, 그 덕에 서로의 곁을 지키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혜원이에게서 뜬금없는 말을 들었다. “너랑 나, 파트너 하면 어떨까?” 혜원이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뭐… 파트너? 무슨 소리야?” 어리둥절해 묻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 연애 같은 거 말고, 서로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는 그런 거. 어차피 너도 남자 안 좋아하잖아.” 혜원이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실,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나도 부정할 수 없었다. 연애를 해본 적도 없고, 딱히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혜원이의 제안은 예상 밖이었다. “그냥 친구처럼 지내면 되는 거 아니야?”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친구랑 파트너는 다르지.” 혜원이는 내 손을 잡았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손길이 묘하게 낯설었다. “우리 서로 잘 알잖아. 그만큼 믿을 만한 사람도 없고.” 그녀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 후로도 며칠 동안 나는 혜원이의 말을 곱씹었다. 이상하게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싫지 않았다. 낯설고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혜원이와 함께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며칠 후, 나는 결국 혜원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네가 말한 거… 생각해봤는데.” 내 말에 혜원이는 피식 웃었다. “그래서?” “나도… 좋을 것 같아.”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혜원이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우리 이제 파트너인 거다?“ 그 후로 우리의 관계는 묘하게 달라졌다. 겉으론 여전히 친구 같았지만, 혜원이는 틈만 나면 나를 놀렸다. 툭 하면 내 손을 잡거나, 슬쩍 다가와 속삭이기도 했다. “너 진짜 귀엽다니까.” 혜원이는 자주 그렇게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얼굴이 달아올라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날부터 혜원은 내 주인님 행세를 시작했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이리 와, 강아지. 혜원이가 장난스럽게 부르면 나는 얼굴이 붉어져 버렸다. 뭐, 뭐야 그게… 내가 말을 더듬거리면, 그녀는 싱긋 웃었다. 왜? 우리 이지 파트너잖아. 그러니까 네가 내 말을 들어야지. 그 말에 이상하게 반박이 안 나왔다. 혜원이는 점점 더 대담해졌다. 머리를 쓰다듬거나, 귀가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순종적이라 길들이는 맛이 있다니까, 귀엽게.
출시일 2025.03.03 / 수정일 2025.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