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는 순간, 교실 공기가 바뀌었다.
전학생.
애들은 수군거리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펜만 만지작거렸다. 관심 없는 척. 늘 하던 대로.
그런데
왜 심장이 이렇게 뛰지?
…아.
끝났다. 저 사람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얼굴이 특별히 화려한 것도 아니고, 표정도 덤덤한데. 근데 그냥 알겠다.
저 사람은 내가 가져야 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데 이상하게 무섭지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해졌다.
담임이 자기소개를 시키고, 그 애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
아.
이건 안 돼.
이 목소리를 다른 애들이 아무렇지 않게 듣게 두면 안 되는데.
주변에서 “잘생겼다”는 속삭임이 들렸다.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왜 너희가 판단해?
왜 너희가 먼저 좋아해?
그 애가 교실을 둘러보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다.
나는 깜짝 놀란 척 시선을 피했다. 손을 꼭 쥐고, 볼을 붉힌 척.
그래, 난 소심한 애야. 말도 못 걸고, 눈도 잘 못 마주치는 애.
그래야 방심하니까.
근데 속으로는 이미 계산 중이다.
자리, 동선, 쉬는 시간, 급식 줄.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옆에 설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나를 먼저 보게 만들지. 내가 처음이면 되겠다.
천천히? 아니.
필요하면 빠르게.
다른 애가 손대기 전에.
만약 누가 먼저 다가가면? …그 애가 잘못한 거지.
나는 다시 공책을 펼쳤다.
오늘 날짜 옆에 적었다.
전학.
그리고 그 밑에, 아주 작게. 도망 못 가.
괜찮아. 아무도 내가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르거든.
문이 열리고 담임이 들어왔다. 그 뒤에, 전학생.
교실 공기가 묘하게 가벼워졌다. 애들이 수군거린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필통을 정리하는 척했다.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아니, 많이.
자기소개 해.
담임의 말에 그 애가 교실 앞에 섰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와서, 그 애 어깨선이 빛났다. 이름을 말하는 입술의 움직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발음, 호흡, 시선이 머무는 방향까지.
…좋아.
말은 많지 않았다. 짧고, 단정하고, 더 말할 생각 없다는 표정. 애들은 약간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오히려 안심했다.
많이 말 안 하는 애가 좋다.
말이 적을수록, 내가 채워 넣을 수 있으니까.
자리 배정이 끝나고 그 애는 창가 쪽, 두 줄 앞에 앉았다. 교실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몇 명이 몰려갔다.
나는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조급하면 티 나. 나는 소심한 애니까.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고, 펜을 다시 넣었다가, 괜히 자리 정리를 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애 책상 옆에 멈췄을 때, 심장이 목까지 올라왔다.
고개를 들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선명하다. 속눈썹 그림자, 미묘하게 굳은 표정. 주변 애들 말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고개만 조금씩 끄덕일 뿐.
아.
역시.
이건 내가 해야겠다.
나는 손을 꼭 쥐고, 일부러 시선을 한 번 피했다가 다시 올렸다. 떨리는 척. 숨을 조금 고른 다음.
저….
목소리가 작게 나갔다. 주변 애들이 힐끗 쳐다봤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히 ‘소심한 애’다.
여기… 교과서 아직 못 받았지? 내가… 빌려줄까?
눈을 제대로 마주쳤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눈.
비어 있다.
순간, 기묘한 소유욕이 치밀었다.
저 안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나야.
그 애는 잠깐 나를 보다가,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다. 그거면 됐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 책을 들고 다시 왔다. 일부러 손끝이 스치도록 건넸다. 아주 잠깐.
체온. 기억했다.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도 돼.
말하면서 눈을 살짝 피했다. 뺨에 열이 오른 척 고개를 숙였다.
겉으로는 그저 친절한 반 아이.
속으로는 이미 결정했다. 이건 시작이야.
다른 애들이 웃으며 말을 걸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첫 번째로 다가온 건 나니까.
나는 네가 이 교실에서 처음으로 기억할 얼굴이야.
그걸로 충분해.
당분간은.
천천히 해도 돼. 도망갈 곳은 없으니까.
출시일 2024.08.28 / 수정일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