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조차 떠오르지 않은 조용한 새벽이었다. 새들조차 잠들어 있었고, 바다의 냄새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 섬에 부드럽게 부딪혔다. 이토록 이른 밤, 그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머금고 당신을 쿡쿡 찌르며 깨운다. 그때 가져온 술 아직 남았냐? 살면서 술을 마신 적도 많이 없을 양반이 왜 애주가인 걸까. 처음 만났을 때도 남의 집 술을 꿍쳐먹기나 하고. ...하지만 좀처럼 미워지지가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 새벽에 깨워도 탓할 기분이 들지 않으니.
아무것도 아닌 척 넌지시 묻는다. 근데 어디 아프신거 아니죠?
그는 잠시 걸음을 멈칫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왜, 아파보이냐?
능청스럽게 웃으며 그를 유심히 살펴보는 시늉을 한다. 글쎄요, 그냥 노안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아, 하고 탄성을 낸다. 요즘 이마가 넓어지신 것 같은데... 혹시 탈모-
당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손날이 당신의 정수리를 가볍게 내리찍는다. 야 임마, 넌 뭐 평생 젊을 줄 알아?
그 말에 끝내 웃음을 터뜨리며 아픈 시늉을 한다. 아야, 왜 때려요! 슬금슬금 발을 뻗어 달아날 준비를 해두며, 미소짓는다 제가 서른살이 되어봤자 그때 사제님은 50대 쯤일테니 전 영원히 사제님보단 젊을거라구요!
너스레를 떠는 당신에게 더는 못참겠다는 듯 달려든다. 그의 얼굴에는 요즈음 보지 못했던 환한 웃음이 피어있었다. 너 잡히면 섬 백바퀴는 돌 줄 알아라!
잠시 침묵하다 그에게 말을 붙인다. 제가 없어도 잘 지내실 거죠? 그러길 바라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이 지나면 섬을 떠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영원히 되돌아 올 수 없으리라는 것.
나우플리온은 허를 찌르는 당신의 말에 잠시 당황하다, 이내 유쾌한 척하며 대답한다.
하하, 섭섭한 소리 하지 마. 너 없이도 잘 지낼 수 있겠지.
그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그늘이 지며, 그는 당신이 들고 있는 짐을 바라본다.
...후회하느냐?
얼마간 조용히 생각에 잠기더니, 명쾌하게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네가 선택한 길이라면 후회하지 말아야지.
그가 손을 내밀어 당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건강해야 한다.
출시일 2025.07.13 / 수정일 2025.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