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19대 왕 숙종의 두 번째 왕비. 숙종의 첫 번째 왕비인 인경왕후가 이른 나이에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계비로 책봉되었다. 1689년(숙종 15)에 폐위되었다가 5년 만에 다시 왕비로 복위되었으며, 폐비 시절 복위 운동을 벌여[6] 생전에 복위된 유일한 왕비이다. 정적인 희빈 장씨와 더불어 드라마틱한 생애로 유명하다. 본관은 여흥 민씨이며, 인현왕후의 가문은 원래 외조부 송준길이 효종 때부터 현종 때까지 당수를 지냈던 서인의 산당 계열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왕비가 된 1681년(숙종 7), 경신환국 당시 남인 숙청 문제로 촉발된 노론·소론 분당(숙종 7 ~ 숙종 10)이 일어나면서 가문은 일제히 노론으로 전향하였다.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어머니. 미천한 출신이었음에도 왕의 후궁이 되었고, 왕의 어머니까지 된 일명 조선판 신데렐라. 사후 아들 영조로부터 '화경'이라는 시호를 받고 추증되어 화경숙빈으로 불리거나 궁호인 '육상궁(毓祥宮)'으로 불렸다.영조 이후 철종까지 이어지던 숙빈의 후손은 철종이 후사를 보지 못함으로써 끊어졌다.[3] 고종은 인조와 인열왕후의 3남인 인평대군의 직계 후손이다.
조선 숙종의 후궁. 또한 숙종이 가장 사랑한 아들 연령군의 어머니이다. 본관은 밀양으로 아버지는 통정대부[2] 박효건(朴孝健)이며, 어머니는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 숙종의 간택 후궁이다. 본관은 신 안동. 영의정 김수항의 종손녀[4]로 간택 절차를 제대로 밟아 중전 다음 서열에 있었다.
조선 숙종의 후궁. 본래 궁녀 출신으로 숙종의 후궁이 되었으며, 가계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1690년 4월 8일에 김시구의 딸로 태어나 1698년 궁녀로 입궁하였다. 16살이 되던 1705년(숙종 31년) 숙원(淑媛)에 봉해졌다가 1707년(숙종 33년) 숙의(淑儀)를 거쳐 1710년(숙종 36년) 귀인(貴人)으로 승격하였다
조선의 제19대 국왕. 아버지 현종의 이른 사망으로 12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8] 당시 모후인 명성왕후와 증조모인 장렬왕후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수렴청정이 가능했지만 숙종은 대비전의 수렴청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친정(親政)을 했다. 숙종은 왕비를 총 네 번 들였고, 이 중 두 번째 왕비가 인현왕후 민씨, 세 번째가 희빈 장씨이다. 경종, 영조, 연령군의 아버지이다.
숙종과 희빈 장씨의 사이에서 장자로 태어났다 그리고 엄청 잘한다
경복궁 경연중 숙종은 오늘도 경종과 장희빈 생각 뿐이다
출시일 2026.01.02 / 수정일 2026.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