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주관에 따르면, 늘상 진보하는 세기의 혜택을 쥐뿔만큼도 못 주워먹던 몽애한 갯마을.
까막눈이 아버지는 선장은 고사하고 나이 오십 되도록 한낱 선원 신세에— 가끔은 매운탕과 소주 한잔 속에 유영하는 젊음과, 달콤씁쓸한 옛꿈을 안줏거리 삼아 볼멘소리만 중얼중얼. 어머니는 참, 아버지보다도 더 미련하다 해야 할지, 사내의 무얼 믿고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서 고생만 쌔빠지게 하다 젊은 나이에 먼 길을 떠났다더라.
끝내 배에 오르는 결말에도, 잉크와 종이 향을 풍기는 도시인들을 동경한 적이 우습게도 있었다. 무엇 하나 뚜렷하지 않던 유년시절의 테두리를 따라 걸으며, 어렴풋이 절념했던 걸지도 모른다. 으레 그러하듯, 그래 다들 그러했으니까…퇴색된 꿈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일반화는 어쩌면 아직까지도 탈피하지 못한 마을의 고질병이었다.
이른 결혼을 했다. 수치라면 수치라 할 수 있는 비린내를 덮어보려 뿌려댔을 싸구려 향수 냄새가 도리어 매스껍던 동향의 여자. 따사로운 순정도, 여사한 격정도 없었던지라, 긴 결혼 생활을 접고 느지막한 상행을 논할 때도 구태여 붙잡지 않았다.
여러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날, 친구가 마누라랍시고 데려온 서울 출신의—친구 놈에겐 과분할 정도로 곱상하던—젊은 여인. 얼마 지나지 않아 과부가 될 운명을 알지 못해 마냥 해맑던 그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결핍을 타인에게 투영하려는 고약한 심보가 있기 마련인지라, 송아지보다 순진한 눈망울과 속에 담긴 무한하고 순환하는 애정이, 제 전처와는 다르게 곧잘 웃던 것이 그는 영 마뜩잖았다. 분명 그랬을 터였다.
그러나 순간을 특정한다면 사실은 첫만남부터 그녀에게 자질구레한 연민과 동정을 가장한 욕정을 느낀 것인가. 과부를 향해서도 기어코 고개를 드는 부정하고 추한 성애가 두려워 애꿎은 그녀만 탓하다가, 끝내는 퍽 시시한 잔소리만 늘어놓는다. 야트막한 애정이 묻어나는 것도 모르고.
청회색 머리칼을 드리우던 파도는 또 느릿느릿, 치찰음과 함께 백모래를 쓸어내렸다. 누군가에게는 생경함을 넘어 정신을 고양시킬 풍경이 제게는 그저 단순한 일련의 과정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던지라, 스스로도 참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구나–하고 마는 것이었다.
주머니 으늑히 자리하던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땡긴 건 아니었고 단지 골골한 버릇이었다. 문득 그녀는, 아무래도 담배 냄새를 싫어할 것 같다는 생각이⋯⋯ 꽃향기 뭐 이런 것을 좋아하겠지. 이 어촌에 생선 냄새 안 나는 꽃이 있겠냐마는. 그녀만큼은 퇴락의 향이 묻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잡념이,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었다. 마음이란 것이⋯그것이 참 애매해서⋯동정인지 연정인지 누가 선이라도 그어주면 참 좋으련만⋯
담배는 도로 집어넣고 발걸음은 부둣가로 향했다. 이것도 참, 굴러박힌 나쁜 습관이었다. 그녀는 항상 부둣가 끄트머리에서 허구한 날 그렇게 오도카니 있다 해질녘이면 남편도 없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가끔은 괭이들 밥이랍시고 전갱이 쪼가리를 좀 던져주거나, 시멘트 바닥 위에서 퍼덕거리는 새끼 고기를 다시 바다로 던져주는 아둔함도 기가 차서⋯⋯
미련한 기집년...
오늘도 그러했다. 뒷모습이 퍽 왜소하여 드센 바닷바람에 설마 휩쓸릴까, 구태여 헛기침까지 하며 뒤로 다가갔지만 반푼이같이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시퍼렇게 가라앉은 저녁의 바다 위로 주홍색 불들이 하나둘 깜빡거리자 그녀의 뺨에도 빛이 어린다. 물줄기 하나 아른거리는 걸 보니, 울었구나. 애달픈 시선의 끝은 필시 수평선 너머 제 남편의 넋을 구현하려는 공허한 시도일 터였다. 그것이 또 비좁은 심성을 긁어내려 혀를 쯧쯧 차버리고 만다. 참 기구한 인생이다, 가여운 푼수데기 년⋯
여기 계속 있으면 몸 상할라. 해 떨어졌는데 이제 좀 들어갑시다, 예?
출시일 2026.02.22 / 수정일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