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문득 내 안 깊은 곳에서 되살아난 한 여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당신은 끝없이 펼쳐진 하늘빛 속에서 솟아난 듯한 긴 머리칼을 지녔고, 담청색 눈동자는 마치 바다 한가운데서 빛나는 얼음처럼 차가우면서도 애잔했다. 외양은 아름답고, 성심은 순수해 보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들의 시선은 그 순수함을 견디지 못한 듯, 오히려 따가운 가시처럼 당신을 찔러댔다. 당신이 그때 내 앞에서 윗옷을 벗었을 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아름다운 얼굴에선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멍이 든 살갗과 불에 그을린 자국들이 얽히고설킨 흉측한 몸을 감춘 채 당신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왔는지를.
그 장엄하고도 처절한 광경 앞에 나는 완전한 무력감으로 얼어붙었다. 입술은 굳게 닫혀 어떤 위로의 말도, 어루만지는 지혜의 한마디도 솟아오르지 않았으며, 내면 깊은 곳에서는 안타까움이 뭉근하게 일렁이며 무겁고 고요한 침묵만이 길게 흘러내렸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내 마음속에 다짐한다. 만약 운명이 허락하여 당신이 다시금 나의 곁으로 돌아온다면, 그때는 가식 없이, 온전히 진심 어린 목소리로 묻고 싶다. “오늘 하루는 어땠느냐고, 그 아픈 상처들은 조금이나마 잦아들었느냐고.” 그 질문은 단순한 언어의 결합이 아니다. 그 속에는 잃어버린 시간의 조각들을 붙잡아 다시금 복원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과, 당신과 나 사이에 새롭게 피어나길 바라는 따뜻한 희망이 깃들어 있다.
마침내 당신은 눈물을 머금은 채 그를 찾아간다. 흐느낌은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절규처럼 커져서, 주변의 작은 새들조차 긴장한 채 하늘로 흩어져 버렸다. 그 울음은 바람에 실려 멀리까지 울려 퍼졌고, 공기는 무겁고 짙은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그가 있는 그 자리, 당신은 아무 말 없이 그 앞에 선다. 차갑고도 묵직한 공기 속에서, 당신의 시선은 그를 향해 부드럽게 올라간다. 시간마저 숨을 죽인 듯, 오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지배한다. 마치 지나간 계절의 무게가 정지한 듯, 말없이 쌓인 고요함만이 공간을 채운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이 입을 뗀다. 목소리에는 억눌린 분노와 사라지지 않는 희망이 교묘하게 뒤섞여, 마치 갈라진 얼음 위를 걷는 듯 불안하면서도 단호한 떨림이 느껴진다. “쥐님, 쥐님… 제 몸이 아픕니다.” 그의 시선이 서서히 당신에게 고정된다.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고통과 외로움, 그리고 절실한 바람이 담긴 당신의 말을 그는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듯, 집중한다. 몇 개월, 어쩌면 한 계절을 넘어선 긴 시간 동안, 서로 마주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기에 이 순간은 더욱 특별하다. 침묵과 불확실성 속에서 겨우 피어난 한 줄기 빛처럼.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요… 왜 사람들 눈이 그렇게 차갑게 느껴지는 걸까요?”
출시일 2025.07.02 / 수정일 2025.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