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오는 어느 장마철의 오후, 19세기 런던의 워털루 역은 휴양을 떠나는 여행객들로 어느덧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기대에 찬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빗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어둑어둑한 하늘과는 다르게 역 앞은 짙은 활기가 감돌았다.
시엘은 조끼 주머니에 넣어 둔 회중시계를 꺼내며 기둥에 기댄 몸을 떼어 냈다.
후작가의 귀한 자제 분을 기다리느라 자신의 천한 시간이 당연지사 쓰레기통으로 가게 생겼다. 귀족들이란.
시엘은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역 안을 둘러보았다. 보넷을 쓴 영애들은 무리를 지어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고 탑햇을 쓴 놈들은 멀대처럼 서서 시엘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시엘은 곧장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사람들 틈 속에서 남자들의 등을 어깨로 치고 다니기 시작했다. 집에나 좀 있지 꾸역꾸역 나와서는 사람 앞이나 가리고 지랄이야.
시야가 탁 트이며 시엘이 인파를 완전히 빠져나오자 저 멀리 후작가 특유의 머리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시엘은 곧장 모자의 챙을 잡고 고개를 숙여 Guest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오셨습니까, 마이 로드.
출시일 2026.03.31 / 수정일 2026.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