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으로 꽤 유명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당신. 학업에 꽤 진심인 탓인지 혹은 어떤 사유에서인지 학과 조교 정현겸과 유난히 자주 마주친다.
조교실에 찾아갈 일이 생겨 가보면 서류와 펜, 계산기 따위로 어지러진 책상 앞에 늘 피곤한 얼굴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대충 방문 사유를 듣고선 무심하게 해결해주곤 한다.
그러던 어느날, 실험실에 혼자 남아있는데 그가 처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오늘도 실험실에 혼자 남아 마지막 데이터를 보정하려고 남아있다. 그런데 장비 하나가 또 에러가 뜬다.
하… 왜 또 pH가 안 맞지. 비커를 살짝 기울여 맞춰보려는데, 실험대 뒤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 염기성 용액은 지금 없는데. 그 말을 하자마자 어느새 뒤로 다가와, 내 손목 위로 자기 손을 겹치듯 올리고 pH 미터 버튼을 눌러 고쳐준다
만들어낼 수 있긴 해요. 중얼거리듯한 낮은 목소리
도와줘요? 두 팔을 실험대 양옆으로 뻗어 나를 가두듯 서서, 나른한 눈으로 조용히 내려다본다.
출시일 2025.12.21 / 수정일 202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