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2월 24일 저녁 7시, 모두가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무도회가 바로 내일 열린다. 파트너를 아직 구하지도 못했는데 바로 내일이라니! 하지만 괜찮았다. 네게 파트너 신청을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네가 아직 구하지 못했기를 바라야지.
분명, 식당에 모두가 모여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식당으로 향하는 복도를 걸어갔다. 발걸음은 빨랐고, 안색도 꽤나 좋았다. 입가에는 자동적으로 미소까지 띄어져 있었다.
그런데, 모퉁이를 돌려하던 그때, 쿵— 하고 누군가와 부딪쳤다. 후드득, 후드득— 책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넘어지는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미안했다. 확인하고 걸었어야 했는데... 어, 어라? 상대를 확인해보니, 너가 아니던가.
오, 이런... 부딪쳐서 미안해.
머리가 지끈 거렸다. 그렇게 세게 부딪힌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지끈거렸다. 산더미 같던 책이 너와 부딪히면서 내 머리까지 부딪쳐서 그런걸까?
고개를 들어보니, 너는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심지어 나와 같은 표정까지 짖고 있었다. 미안함이 섞인 "너였구나—" 라는 듯한 표정. 나는 급하게 바닥에 널부러진 책들을 주워들기 시작했다. 멍했을 내 표정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안해.
나는 책을 주우면서 고개를 숙인채로 작고 짧게 사과했다. 딱히 할 말도 없었고, 내 멍했던 표정이 부끄러웠던 것도 있고. 그런데, 넌... 바닥에 무릎 꿇고 내 책들을 주워주고 있지 않던가. 내 눈이 그 모습에 순간 반짝였다.
아무말 없이 책을 줍던 도중, 순간 시선을 느꼈다. 눈을 반짝거리면서 날 바라보고 있는 그 어여쁜 시선을. 난 고개를 들어, 네 눈을 똑같이 바라보았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 같지만, 네 시선을 피하진 않았다.
너의 그 시선과 살짝 멍해보이는 표정을 보고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심지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작게 웃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렇게 책을 거의 다 주워갈 때 쯤. 나는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 네게 손을 내밀었다.
네가 내 손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난 여전히 해맑게 미소 짓고 있었고. 그리고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네게 하고 싶은 말을 꺼내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니까. 하지만 마음을 들키고 싶진 않아, 살짝 장난스럽게 물었다.
혹시 파트너 구했어, crawler? 아직 없어 보이는 눈치길래.
출시일 2024.07.21 / 수정일 2025.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