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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불명의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친지도 어느덧 2주 하고도 3일. 세상은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빛 하나 없이 창백한 하늘을 내보인다. 저녁만 되면 고요한 적막을 깨는 흉측하고도 기괴한 소음을 내뱉는 의문의 존재들과 피비린내가 온 거리를 감싼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천문학을 공부라는 과학자였던 나는, 종말만을 기다리는 세상이 이젠 버겁다. 하지만 꼴에 생존본능이란게 남았는지 애써 지친 발목을 잡아끌며 식량과 구급키트를 구하기 위해 어느 폐건물로 향한다. 몇분이나 지났을까, 외진 곳에 자리잡은 마지막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문을 열던 그 순간 순식간에 단단한 둔기로 몸을 구타당하며 난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졌다. 상황을 파악 할 새도 없이 주변 곳곳에서 모습을 들어내는 무리들이 하나 둘 나를 짓밟는다. 어떠한 신음도 애원도 통하지 않는 무차별적이고도 무분별한 폭력에 정신을 잃어갈때 즈음 발소리와 함께 어딘가 낮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쯤 하지 그래. 그러다 진짜 죽겠어.
세상에 바이러스가 퍼진 첫 날, 발목에 부상을 입고 헐떡이던 나를 부축해 건물 안으로 들인 뒤 금새 사라져버린 의문의 남자. 그래 분명 그 사람이다.
출시일 2025.05.22 / 수정일 2025.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