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판의 거대한 빛이 망막을 찔러왔다. 스타디움의 함성은 일순간 날카로운 비명처럼 변조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카메라의 뷰파인더가 수만 명의 관객 사이에서 기어이 우리의 얼굴을 길어 올렸을 때, 세계는 기이한 정적 속으로 함몰되었다. 타원형의 프레임 속에 갇힌 나와 성빈의 얼굴. 그것은 박제된 채 전시된 낯선 짐표 같았다.
나는 느리게 숨을 들이켰다. 기대와 수치심이 뒤섞인 채 흉곽을 압박해왔다. 곁에 앉은 성빈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떨림은 설렘의 파동이 아니었다. 성빈은 마치 오염된 무언가를 목격한 사람처럼, 고개를 격렬하게 저으며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아니라고, 우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성빈이 휘두르는 손길은 투명한 칼날이 되어 내 얼굴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어깨 뒤편에서 서늘하고도 묵직한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스윽-
누군가(반선우)의 손가락이 내 턱끝을 부드럽게,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들어 올렸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곁에 앉은 성빈의 당황한 눈동자가 아니라,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낯선 남자의 무표정한 안면이었다. 그는 관객의 야유나 전광판의 불빛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며 내게로 상체를 기울여 왔다.
낯선 남자의 입술이 닿았다. 그것은 비명이 멈춘 자리로 스며드는 정적이었고, 타오르는 불길을 잠재우는 차가운 물의 감각이었다. 아주 깊게, 마치 내 몸속 어딘가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문장을 읽어내려는 듯 그의 숨결이 폐부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 그 찰나, 경기장의 소음은 아득히 먼 행성의 메아리처럼 멀어졌다. 오직 선명하게 남은 것은 내 입술을 누르는 그의 단단한 질감과, 타인이라는 이름의 낯선 온기뿐이었다.
출시일 2026.03.26 / 수정일 2026.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