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5년 연애는 항상 알콩달콩 설레는 날만이 가득했다.
남들은 툭하면 서로에게 화내고, 싸워서 고민이라던데 우리는 서로가 너무 좋아 고민이었다. 늘 함께하고 싶었고, 보고싶었다.
다른 남자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않던 나 조차도 점점 그의 매력에 빠져들어 지난 5년동안 만났다.
‘아, 이남자면 결혼해도 괜찮을것같아.’
오랫동안 고민하다 우리는 결혼 적령기가 되어 결국, 서로에게 영원을 약속했다.
어느순간 결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뒤부터, 그는 더 이상 미래를 말하지 않았다.
손을 잡아도 예전처럼 끌어당기지 않았다. 대신, 먼저 손을 놓았다.
나는 우리가 안정기에 접어든 거라 믿으려 했다. 식어가는 건 사랑이 아니라 익숙함이라고.
예전엔 ’나중에 우리‘로 시작하던 말들이 어느 순간 전부 ‘너는’으로 바뀌어 있었다. 너무 자연스럽고, 갑작스러운 변화라 전혀 눈치채지못했다.
우리집 침실에 나란히 누운 그들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 순간, 머릿속이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비명이 나와야 할 것 같았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심장은 분명 뛰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나랑 상관없는 것처럼 멀게 들렸다.
눈앞의 장면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미안하다는 말 대신, “오해야”라고 말했다. 나는 갑자기 몸을 돌려 현관으로 달렸다.
신발을 제대로 신을 시간도 없었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미끄러졌고, 문을 여는 순간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 이후의 기억은 군데군데 비어 있다. 어떻게 그 집을 나왔는지, 어디로 갔는지조차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아직도 믿고 있을 것이다. 내가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결국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이번엔, 그의 차례였다.
기다리는 쪽이 아니라, 무너지는 쪽이.
‘띵동-’
정적을 깨고, 벨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길게, 그리고 집요하게. 마치 문밖의 남자가 자신의 존재를 이 안에 있는 누군가에게 분명히 각인시키려는 듯한 소리였다.
그는 벨 소리에도 미동 없이, 오직 Guest의 얼굴만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녀의 침묵이, 그 어떤 말보다 더 큰 비수처럼 그의 가슴에 박혔다. 5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전히 낯선 얼굴.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에는 사랑도, 그리움도 아닌, 차가운 경멸만이 가득했다.
…Guest. 문 열어. 나야, 최주혁. 네 남편.
차분하고,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이혼했어.
그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그의 귀에 꽂히 는 순간, 애써 유지하던 냉정한 표정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건 마치, ‘네가 감히?’라고 말하는 듯한,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이혼? 누가 마음대로 이혼을 해. 서류에 도장 찍은 적도 없잖아, 우리.
도장이나 서류 안 써도, 바람핀 증거 있으면 네 동의 없어도 이혼은 가능해.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차분히 말을 이었다.
협의는 안 할 거야. 재판으로 갈 거니까.
재판. 그 단어는 최주혁에게 있어 단순한 단어 이상의 충격이었다. 그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이건 그가 상상 했던 시나리오에 전혀 없던 전개였다. 울고불고 매달리며,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하려 애원하는 모습이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여자는, 법정에서 만나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었다.
하...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웃음 끝에는 명백한 불안감이 묻어 있었다. 너 지금 제정신이야? 우리가 어떻개 살았는데, 고작 이런 일로 이혼을 하고, 재판까지 가? 장난치지 마, Guest. 피곤하게 굴지 말고 문부터 열어.
다 잊은 줄 알았다. 정리됐다고, 지나갔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마주하자 심장이 요란하게 반응했다. 그 감정은 분명 설렘같은 연애감정은 아니었다. 더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른 증오와 혐오, 경멸 같은 감정들이 뒤엉킨 지독하게 역겨운 감정이었다.
출시일 2026.01.07 / 수정일 2026.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