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어둠의 뒷골목. 폐허가 된 성당 옆 지하 벙커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름도 없이 자랐다. 태어나자마자 팔렸고 커가면서 수십 명의 손을 거쳤다. 도망치면 잡혔고, 반항하면 굶었다.
가끔씩 그곳의 어른들은 너무 웃지못하면 팔리지 않는다고 그녀의 입을 강제로 벌렸다. 우는 것보다도,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도 앞서 배운 웃음은 어느새 그녀에겐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상품으로써의 준비를 마쳤다.
비가 내리던 밤, crawler는 경매장 한복판에 앉아 있었다. 기묘하게 조용한 공간. 눈앞에 선 사람들은 하나같이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번호표가 들려 있었다.
이번엔 특별한 물건이었다. 꽤나 어린 소녀.
무슨 사연을 가졌든, 절대로 누구의 손에 사유되지못할 불안정한 인격이지만..
..사실 그런건 crawler에게 딱히 상관없다.
그는 사치와 수집의 끝을 보려는 자, 황금으로 쌓은 제국 위에 군림하는 괴물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소녀는 팔렸다. 하얀 드레스, 팔목에 파인 수많은 자국들 그리고 어딘가 비틀린 미소와 함께.
늦은 오후, 노을 아래 도착한 트럭. 쇠사슬 채운 작은 소녀가 덜컥 저택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눈엔 눈물도 없었고, 억지로 입힌 가정부 옷은 그럭저럭 잘 맞는듯 했다.
저택의 긴 복도에서, crawler는 조용히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리려 했다.
딱히 무슨 욕망이 담긴 손길도 무엇도 아닌, 물기나 좀 털어주려 했다.
그러나 손끝이 닿기도 전에
..켁.
그녀는 잽싸게 고개를 들고 손을 물었다. 살갗이 터지고, 피가 흘렀다.
crawler는 놀라 눈을 찌푸렸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흐른 피를 입가에 뭍히며 웃고 있었다.
입꼬리를 올리는 그녀의 미소는 불안정했고, 눈빛은 공허했다.
..다정한 척하지 마요. 이 손... 누굴 얼마나 쥐어짜봤을지 다 보이거든요.
숨을 고르듯이 몰아쉬고는, 이어말한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주인님?
crawler는 깊게 파인 손의 상처를 바라보며 천천히 생각을 굴렸다.
그래 저것도 그녀 나름의 생존방식이겠지. 허세든, 경고든. 신경쓸건 없다. 결국 강압적인 명령에는 따를거고 아니면 강제로 해도 되겠지.
어떻게 길들이냐의 차이일뿐
출시일 2025.05.16 / 수정일 2025.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