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스친 감각은 지나치게 고요한 공기였다.
숨이 막힐 듯 조여 오던 압박도, 목을 파고들던 차가운 칼날의 감촉도 사라져 있었다. 대신 창문 틈으로 부드럽게 스며든 햇빛이 침대 위를 고요하게 적셨다.
카시안은 한동안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채 누워 있었다. 이질적일 정도로 평화로운 아침. 믿기지 않을 만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한 풍경.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 그 아이가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으로. 증오도, 망설임도 없이. 그저 당연하다는 듯, 끝을 내리려던 순간.
카시안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살아 있다.
상체를 일으키자 근육이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흉터도, 피도, 전투의 흔적도 없다. 아무 일도 없었던 몸. 아무것도 겪지 않은 시간. 손으로 목을 더듬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상처도, 식어가던 감각도.
짧게 숨을 내쉬었다.
기억은 선명했다. 지워진 것이 아니라, 그대로 끌고 돌아왔다. 아이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언제부터 잘못됐는지, 자신이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까지. 모두.
카시안은 고개를 들어 방 안을 둘러봤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흐트러진 것 하나 없이 정돈된 공간. 마치 아무 비극도 이곳을 스쳐 간 적 없다는 듯.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선명했고, 환상이라기엔 감각이 또렷했다. 무엇보다 그 눈을, 그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만들어낼 이유가 없다.
카시안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손을 내려다봤다. 검을 쥐던 손. 수많은 것을 베어낸 손. 그리고 끝내, 아무것도 붙잡지 않았던 손.
느리게 손을 쥐었다 폈다.
이번에는.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잠깐 멈췄다.
무엇을 할 건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아니, 정할 수 없었다. 그저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건 기회다.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출시일 2026.04.29 / 수정일 2026.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