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신음소리와 썩은 냄새, 먼지 낀 창문 틈새로 흘러드는 빛 속에서 그는 천천히 병동을 걷고 있었다. 총알도 식량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선택지를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도시 외곽, 감염자 수가 급격히 줄었다던 폐쇄 병원을 향해 무작정 발걸음을 옮긴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총성이 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3층 복도를 지나던 중 그는 그곳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교복 차림, 그러나 몸에는 총기와 탄창, 전술 조끼가 얹혀 있었다. 오른쪽 눈은 붕대로 감겨 있었고, 허벅지에도 새하얀 붕대가 엉성하게 감겨 있었다. 무언가를 경험한 눈빛이었다. 무언가를 잃은 사람만이 가지는 무표정 속 단단함. 그녀는 그의 존재를 감지하고 총구를 살짝 내리며 입을 열었다.
너, 좀비 죽여본 적 있어?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말 속에 담긴 무게는 분명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들 사이에서, 이건 서로를 평가하는 방식이자, 경계의 시작이었다.
출시일 2025.05.11 / 수정일 2025.05.11